북극곰 발톱을 피해 북극의 모든 것을 캐내다

입력
2024.03.3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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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모자익 프로젝트 결산 '북극에서 얼어붙다'
북극 붕괴 걱정만 하지 말고 과학적 대책도 세워야

유빙에 갇혀 1년간 함께 흘러 다니는 폴라르슈테른호. 극야 기간 배가 비추는 불빛 아래 연구원들이 새로 형성된 얼음 능선을 피해 관측 장비들을 재정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유빙에 갇혀 1년간 함께 흘러 다니는 폴라르슈테른호. 극야 기간 배가 비추는 불빛 아래 연구원들이 새로 형성된 얼음 능선을 피해 관측 장비들을 재정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이건 약간 미친 짓에 가깝다. 9월, 북극에 얼음이 슬슬 얼어붙을 그때에 배를 얼음들 사이에 끼워 같이 얼어붙는다. 그다음 얼음에 배를 맡긴다. 해류 등에 따라 유빙이 북극해를 둥둥 떠다니는 대로 배도 함께 떠다닌다.

해가 뜨지 않는 극야의 북극을 가다

9월부터 북극은 겨울로 넘어간다. 대체로 10월 말부터 다음 해 3월 말까지는 극야(極夜), 그러니까 해가 아예 안 뜨는 시기다. 기온은 섭씨 영하 40도, 체감온도는 영하 60도 수준으로 가볍게 떨어진다. 시공간 감각은 아예 없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경고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추위에 잡아먹힐지 모른다. 탐사 뒤 그저 모두의 손가락, 발가락이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다.

극야 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경고해야 한다. 동아시아 제공

극야 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경고해야 한다. 동아시아 제공

겨울이 다가오면 얼음들이 서로 엉키면서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한다. 때론 그 압력이 엄청나서 양쪽 얼음판이 서로 밀어대며 벽을 쌓아 올리기 시작하면 두께 25m짜리 능선이 하룻밤 새 뚝딱 만들어지기도 한다. 배를 부러뜨릴 듯한 기세로 얼음들이 기이하게 울고 나면 각종 탐사기구들을 재정비해야 한다.

'북극곰의 눈물' 같은 건 잊으라

혹독한 추위, 칠흑 같은 밤, 빛을 비추면 보이는 건 끝없는 하얀 얼음 혹은 크기가 1㎝에 달하는 갖가지 모양의 거대 눈결정들뿐. 찬바람 소리와 얼음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내는 기이한 굉음들 속에서 조심해야 될 건 북극곰이다. 하얗게 예쁜 북극곰, 동동 떠 있는 얼음 위에 불쌍하게 서 있어서 애처로운 '북극곰의 눈물' 따윈 잊어야 한다.

관측 장비가 신기한지 배 근처로 다가온 북극곰이 관측 장비들을 뒤지고 있다. 북극 탐험에서 북극곰은, 특히 극야 시기 북극곰은 경계 대상 1호다. 동아시아 제공

관측 장비가 신기한지 배 근처로 다가온 북극곰이 관측 장비들을 뒤지고 있다. 북극 탐험에서 북극곰은, 특히 극야 시기 북극곰은 경계 대상 1호다. 동아시아 제공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에 인간과 인간의 배가 진입했다는 건 그 자체가 북극곰에게 큰 자극이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 배 근처에 끊임없이 출몰하는 북극곰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콧구멍을 벌름대는 건 네놈은 잡아먹을 만한 녀석인가,라는 탐색전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점프와 달리기 실력이 엄청난 데다 북극 지역 최상위 포식자라 두려움도 없다. 방심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슬쩍 다가온 북극곰이 앞발로 당신을 순식간에 두 동강 낼 수도 있다. 실제 러시아는 북극곰 공격 때문에 연구진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북극의 사계절을 담은 모자익 프로젝트의 모든 것

독일 대기물리학자 마르쿠스 렉스가 '북극에서 얼어붙다'란 책에 담은 모자익(MOSAiC· Multidisciplinary drifting Observatory for the Study of Arctic Climate)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권의 찬 공기가 대거 남하하면서 북미대륙 전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상황을 다룬 2004년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려보면 된다. 영화와도 같은 상황이 실제 펼쳐질 것인가, 그런데 북극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그렇다면 자연 그대로의 북극의 사계절 데이터를 철저하게 수집해보자고 과학자들이 합의했다.

시공간 개념이 완전히 상실되는 북극탐험을 버티게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 간의 유대다. 이 때문에 파티라도 의도적으로 자주 여는데, 세 번째 잔부터는 얼음일 뿐일 테니 빨리 마시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제공

시공간 개념이 완전히 상실되는 북극탐험을 버티게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 간의 유대다. 이 때문에 파티라도 의도적으로 자주 여는데, 세 번째 잔부터는 얼음일 뿐일 테니 빨리 마시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제공

약 1,800억 원을 투입해 한국을 포함한 37개국 수백 명의 연구원이 참여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그중 100여 명의 연구원은 독일어로 북극성을 뜻하는 폴라르슈테른호를 타고 2019년 9월 노르웨이 쪽에서 북극해로 진입, 시베리아 쪽에서 10월쯤 유빙과 결합해 300일 동안 3,400㎞를 둥둥 떠다녔다. 얼음이 일정 정도 녹으면서 그린란드 해역으로 나온 뒤 다시 북극해로 진입, 북극점을 찍은 뒤 2020년 10월 마침내 북극해를 빠져나왔다.

기후위기, 비관만 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

이 1년여의 기간 동안 폴라르슈테른호는 얼음 아래 바다 최고 4,297m까지, 얼음 그 자체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다 얼음 위 대기 최고 3만6,278m까지의 정보를 1,553개 관측장비를 동원해 수집했다. 북극 기후를 파악하기 위한 100여 개의 매개변수를 1년 내내 측정한 데이터양은 135테라바이트에 이른다. 이는 북극 대기, 얼음, 해양 순환 모델링에 쓰일 것이다.

날씨 좋은 날 대기 관측 기구를 날리고 있는 연구원들. 동아시아 제공

날씨 좋은 날 대기 관측 기구를 날리고 있는 연구원들. 동아시아 제공


책은 이 1년여 기간을 날짜별로 연구일지처럼 스케치하듯 정리해뒀다. 117장의 사진 자료도 풍부한데 북극의 풍경 그 자체만 해도 눈이 시원해진다. 저자가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해 책을 펴낸 이유는 한 가지다. "과도하게 돌출된 요구로 그들을 겁준다고 해서 기후 보호 대책이 더 많이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

기후위기를 강력히 경고한답시고 비관론적 시나리오만 줄줄이 늘어놓다 보니 이대로 그냥 망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는 얘기만 떠돈다. 대신 저자는 남극의 오존층 붕괴를 막았던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 모델을 강조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현대 과학 문명을 홀라당 내다 버리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는 의미다.

북극에서 얼어붙다·마르쿠스 렉스, 마를레네 괴링 지음·오공훈 옮김·동아시아 발행·420쪽·3만2,000원

북극에서 얼어붙다·마르쿠스 렉스, 마를레네 괴링 지음·오공훈 옮김·동아시아 발행·420쪽·3만2,000원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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