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고문·암매장한 '바다 위 생지옥'...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 피해 인정

입력
2024.03.27 15:13
수정
2024.03.27 16:01
10면

진실화해위, 원생 4600명 피해자 결론
강제수용 40년간 폭행, 성폭력 등 일상
"기본권 말살... 관련 특별법 제정해야"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0월 경기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이곳에는 선감학원 관련 유해가 150여 구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0월 경기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이곳에는 선감학원 관련 유해가 150여 구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일제시대부터 40년간 아동·청소년을 강제수용해 인권을 침해한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피해 규모는 적게 잡아도 4,600명이 넘는다.

27일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위원회는 전날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제75차 위원회를 열고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진실규명을 신청한 63명을 포함, 모든 원생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사실관계를 확정했다. 진실화해위가 2022년 10월 이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로 처음 규정한 후 피해자 규모까지 확정하면서 조사는 종결됐다.

선감학원 사건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 조선총독부가 부랑아 교화를 명목으로 경기 안산시에 있는 섬 선감도 전체를 사들인 뒤 감화시설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갱생 및 교육 목적과 달리 8~19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을 염전과 농사, 축산, 양잠 등의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됐지만 인권유린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1982년 폐쇄 직전까지 경찰과 공무원들은 조직적으로 강제 연행한 아동을 시설에 공급했다.

경기 안산시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동들의 원아기록대장. 진실화해위 제공

경기 안산시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동들의 원아기록대장. 진실화해위 제공

선감학원은 강제 노역뿐 아니라 무차별 폭력과 고문, 성폭행 등 아동 인권침해의 온상이었다. 원아대장을 분석한 결과, 퇴소 사유 중 탈출이 824명(전체의 17.8%)이었는데,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한 상당수가 탈출을 시도하다 섬 주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타나 영양실조로 숨지거나 탈출 도중 사망한 원생들을 학원 측이 암매장해 국가폭력 사실을 은폐하려 한 사실도 확인됐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2022년 9월과 지난해 10월 두 차례 안산시에서 무연고묘 114기 중 45기를 발굴해 아동의 치아 278점, 유품 33점을 찾아냈다.

파악된 피해자 수는 4,600명이 넘는다. 원아대장에 기재된 총원생은 4,689명으로 알려졌으나, 1982년 7월 경기도청 부녀아동과가 작성한 자료엔 5,759명이 수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 자료보다 희생자 규모가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인권침해, 경기도 책임이 가장 커"

김동연(오른쪽) 경기지사가 2022년 10월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김동연(오른쪽) 경기지사가 2022년 10월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장기간 불법을 묵인한 경기도에 있다고 판단했다. 관할 당국이 부랑아 보호와 직업훈련이라는 설립 목적을 점검하기는커녕 선감도 내 도유지 등 도유재산 관리에만 목맨 정황이 뚜렷한 탓이다. 진실화해위가 확보한 1981년 경기도의 ‘선감학원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경기도청 이재과는 ‘현재 선감학원이 (도유)재산을 관리하므로 문제점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학원 운영을 위탁할 경우 원생들에게 좋은 생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으나, 도유재산 관리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도 공개됐다.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등 집단수용시설은 보호가 아닌 도시빈민을 격리할 목적으로 운영됐다”며 “우생학적 논리를 적용해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말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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