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2006년경 법원의 모토는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었다. 다음 대법원장 때는 '국민과 소통하는 투명하고 열린 법원'이 목표였다. 그다음엔 '좋은 재판'이란 말이 등장했다. "그런데 좋은 재판이란 대체 뭐요?" 누가 물었지만 선뜻 답할 수 없었다.
"해적선에 태우기엔 동기가 불순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해적 대장 노파가 소년 파즈에게 한 말이다. 선함은 좋은 해적에겐 어울리지 않은 불온한 마음가짐인가 보다. '미니언즈'의 그루는 또 어떤가. 그 역시 좋은 악당이 되는 게 꿈이다. 좋은 재판처럼 '좋은 무엇 되기'는 살면서 늘 부닥치는 소망이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다들 왜 이렇게 '좋은'에 집착하는 걸까. '좋은'이란, 어떤 상태라기보다 지위를 불문하고 각자의 삶을 정당화하는 평가 항목이어서일까. 아무튼 '좋은'의 시대도 끝났다. 이젠 '빠른'의 시대다. 모호한 '좋은'을 추구하다 재판이 늦어졌다는 비난이 쇄도한다.
우리의 재판 속도가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조사가 있고, 빠름이 사법부의 목표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국민이 불편을 느낀다면 법원은 즉각 반응해야 한다. 신임 대법원장 역시 취임 직후, 법원장에게 재판을 맡도록 하고, 재판부 근속기간을 1년 연장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등 가능한 조치를 다 하고 있다. 재판 지연 문제만 나오면 꼭 풀고 싶은 오해가 있다. 요즘 판사들이 워라밸만 챙기며 편하게 일한다는 점이다.
2022년 11월 정의철 판사는 심장두근거림 등으로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도중 사망했다. 정 판사는 입원 3주 전인 추석 연휴에도 밤늦도록 일했고, 혈소판 수치 저하로 응급 수혈이 필요한 상태에서도 야간 및 휴일 근무를 수시로 했다.
매년 9월 13일은 법원의 날이다. 이날 대법원장 표창을 수여하는데, 최근 5년간 수상한 판사는 이승윤(2019), 박주영(2020), 이대연(2021), 윤희찬(2022), 정의철(2023)이었다. 이 중 생존자는 나 혼자다. 2020년 가을에 사법연수원에서 신임법관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공감능력을 갖추되 참혹한 사건을 일상으로 다루는 직업 특성상, '엑스맨'의 울버린처럼 상처에서 빨리 회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빠듯한 인력 상황에서 결원이라도 생기면 동료 판사들이 대단히 힘들므로, 건강과 내구성이야말로 좋은 판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연수원 강의를 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내가 쓰러졌다. 중환자실에서 수발을 들던 아내는 일하는 게 늘 조마조마했다고 회상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저 창밖만 바라봤다. 후회는 없었지만 좋은 판사가 되지 못해 아쉬웠다.
국민의 명령인 이상, 법원은 '좋은 재판'을 위해 신중히 가기도 하고, '정의'라는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빨리도 갈 것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시대의 요청에 반응하며,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걸음마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느림', 밀란 쿤데라)는 말처럼, 빠름이 망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잊어선 안 될 것은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사는 날이 늘수록 날짜의 의미가 자꾸 중첩된다. 2022년 이전에는 그저 '빼빼로 데이'였던 날이 이제는 나의 좌배석 판사를 추모하는 날이 되었다. 이날이 되면 나는 정 판사를 최대한 느리게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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