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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질 안 꺼내고 수술 끝낸 안과 의사... "보험금 수억 탔다"

입력
2024.04.01 04:30
수정
2024.04.01 15: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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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둔갑, 보험사기]
대법 판결 후 보험금 수령 '꼼수'
보험사, 의사와 합의하고 고발 포기
"안 드러난 보험사기 훨씬 많을 것"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남에서 안과를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22년 6월 이후 백내장 수술법을 변경했다. 환자가 수술을 받고 바로 퇴원하더라도 입원 보험금을 받아내기 쉬웠던 전과 달리 2022년 대법원 판결 이후 '진짜 입원'을 증명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만~5,000만 원을 받던 수술비는 회당 20만~30만 원의 통원치료비로 대체됐다. 백내장 수술로만 월 수십억 원에 달했던 수입은 수천만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A씨는 수술이 끝난 환자를 '입원이 필요한 상태'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대상은 내원 환자 중 '비급여 다초점렌즈 백내장 수술'을 보장해 주는 실손보험 가입자였다. A씨는 환자 눈에 넣었다가 수술 후 제거해야 하는 '점탄물질(점성과 탄성이 있는 의료용 물질)'을 일부러 제거하지 않았다. 환자 안압을 인위적으로 높여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환자들의 안압은 정상 범위인 10~21수은주밀리미터(㎜Hg)를 훌쩍 넘은 40~76㎜Hg까지 치솟았다. 환자들은 통증을 호소했고, A씨는 이들을 입원시킨 뒤 안압을 떨어뜨리는 약 처방 및 추가 시술을 진행했다. 비급여인 안구광학단층촬영(CT)에 서울 의원급 평균가(약 8만7,000원)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600만 원을 책정했지만 상관없었다. 실손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작용 속출, 증빙 재활용까지... 처벌 無

약 6개월간 이어진 A씨의 위험천만한 '기술'은 급증한 청구액을 깐깐히 들여다보던 보험사에 포착됐다. A씨 병원에서만 비슷한 증상의 부작용 환자가 속출한 게 의심을 샀다. 보험사가 자문한 대학병원 측은 "거의 모든 환자가 수술 후 심한 안압 상승을 보이는 데다 정도가 심각한 안압 상승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은 매우 드물다"며 "고의로 안압 상승을 유도한 게 아니라면 (이 병원의) 안압 측정 결과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이 병원에서만 비정상적인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해당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하며 보낸 안구 사진 중엔 똑같은 사진이 많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청구 거절을 피하기 위해 A씨가 증상이 심각한 환자의 사진을 여러 번 재활용한 것이다. 보험사 추궁에 A씨는 순순히 인정했고, 그간 받아냈던 보험금 수억 원을 토해내는 것으로 보험사기 행각은 일단락됐다.

문제는 환자들이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해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당 지급된 보험금 환수가 최우선인 보험사가 A씨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탓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수사, 재판 과정을 거치느니 돈을 돌려받는 게 낫다"며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판결을 통해 줄어들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대부분 보험사는 합의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집행유예만 받아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것으로 의료법이 개정됐지만, 환자 건강을 담보로 보험사기를 저지른 A씨는 현재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안과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인 끼면 판 커지고 입증 어려워

보험사기는 이처럼 의료인이 적극 가담하거나 조장하면서 전문화·조직화하는 추세다. 이들은 주로 보장 범위가 넓고 금액이 크며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입원이나 비급여 항목을 노린다.

의료인, 보험 종사자 등이 끼면 판이 더 커진다. 의사와 브로커가 공모해 지방에서 끌어온 수백 명 이상의 환자에게 허위 진료기록과 영수증을 발급해 보험금이나 요양급여를 받아내는 식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한 한의원은 2019년 6월부터 약 5개월간 브로커가 모은 실손보험 가입자 650여 명에게 치료용 약을 처방해 준 것처럼 꾸며 8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16억 원을 챙겼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의료인의 진단서 위변조 및 입원수술비 과다 청구로 인한 보험사기는 3년 연속 보험사기 유형 1위다. 지난해 사기 금액은 2,031억 원으로 전체의 18.2%를 차지(금융감독원 집계)했다. 드러나지 않은 보험사기는 훨씬 더 많다. 의료인까지 한통속이 되면 사기 입증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인의 고의성을 증명하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자백이 없는 한 덮고 넘어가는 사건이 부지기수"라며 "조속히 합의하는 게 그나마 최선"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무릎 줄기세포 주사'가 보험사기 수단으로 부상했다. 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 흡인물 무릎주사'가 지난해 보건복지부 고시 신의료기술로 지정되면서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해진 탓이다. 이 주사 관련 월평균 보험금 청구 건수는 95.7%나 증가했고, 무릎과 관련 없는 안과와 한방병원까지 잇따라 청구할 정도다. 어느 병원은 100만 원, 바로 옆 병원은 2,600만 원 등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영양주사제에 5,000만 원을 받는 병원도 있다"며 "실손보험 최대 보장 범위까지 가격을 정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는 구멍 하나를 막으면 또 다른 구멍을 찾아 옮겨가는 식이라, 쫓아가는 사후 대처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비급여 항목 점검과 규제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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