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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보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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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행동은 작아 보여도 여럿이 모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후대응을 실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이 4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보라미는 서울 보라매초등학교의 캐릭터로 지난해 약 80일간 1, 3학년 아이들과 잔반 줄이기를 통한 학교 탄소중립 활동에 함께했다. 사실 잔반 줄이기는 새로울 것 없는 활동이다. 내가 어릴 때는 농부의 땀과 정성을 잊지 않기 위해, 한동안은 잔반 처리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했다. 그리고 최근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탄소발자국이 엄청나다는 이유가 추가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인공지능(AI) 잔반 로봇이 조력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AI 잔반 로봇은 우선 인공지능 카메라로 학생들의 개별 얼굴을 인식한다. 식사를 마친 식판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잔반의 양과 탄소발자국을 알려준다. 데이터는 학생별, 학급별, 학년별, 기간별로 다양하게 축적된다. 나는 예전보다 잔반을 덜 남기는지, 우리 반이 세운 잔반 제로 목표는 성공했는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줄인 음식물 쓰레기와 탄소발자국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이에 덧붙여 행동 변화의 주요 전략인 동료와의 비교, 피드백도 적용되었다. 그룹 평균 대비 많이 남겼을 경우 빨간색, 보통은 파란색, 적게 남기면 녹색 불빛이 나타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초반 연구진은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주어지는 피드백으로는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밥 잘 먹으면 귀여운 캐릭터가 쑥쑥 크는 피드백은 어떨까요?’라는 신입 연구원의 신박한 아이디어에 보라미들이 소환되었다. 보라미는 학생이 밥을 잘 먹지 않으면(잔반량이 많으면) 부화도 하지 못한 알 상태이다가 밥을 잘 먹을수록 쑥쑥 성장하고, 심지어 잔반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면 멋진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갔다.
요즘 아이들에게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지 않으면 어쩌나 교직원과 연구진의 걱정은 산더미였지만 이내 화면에 나타난 귀여운 보라미들에게 아이들은 환호했다. 누가 더 크고 멋진 보라미를 볼 것인지 관심이 집중됐고, 보라미가 날기라도 하면 다 같이 박수 치며 신나 했다. 알 상태의 보라미를 본 친구들은 시무룩했지만 이내 나도 곧 날아가는 보라미를 볼 것이라 다짐했다. 보라미의 인기는 쉬이 식지 않아 날아가는 보라미가 몇 번 나왔는지 세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효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AI 잔반 로봇 측정 결과, 잔반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학생이 2배로 늘어났다. 사전사후 설문조사 결과 기후변화 인식, 실천 의지 역시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학생들이 남긴 소감에서는 ‘날아가는 보라미를 보기 위해 열심히 했다’, ‘보라미가 생각보다 많이 못 날아 아쉬웠다’는 내용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이들에게 AI 잔반 로봇의 스타는 단연 보라미였다.
보라미는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칭찬, 즐거움, 자부심과 같은 긍정적 감성, 대상인 초등학생을 고려한 친근한 매개체와 쉬운 피드백 등 기후행동 유도의 핵심 전략이 모두 반영된 결과이다.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온실가스의 양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보라미와 함께 고된 잔반 줄이기가 조금이라도 즐거웠고, 보라미를 보기 위해 먹기 싫은 반찬도 먹어보고 성취감까지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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