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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김혜순의 환상적 비상...한국인 최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입력
2024.03.22 17:01
수정
2024.03.22 17:3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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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날개 환상통' NBCC 어워즈 수상
최종 후보 5개 가운데 유일한 번역본
등단 40년 기념 2019년 출간 시집
"최근 10년 해외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 시 부문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사진은 지난 2022년 4월 김 시인이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열린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문학과지성사 제공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 시 부문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사진은 지난 2022년 4월 김 시인이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열린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문학과지성사 제공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너는 더러워서 안 돼'

-'날개 환상통' 일부

김혜순(69)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이 올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 수상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열린 '2023 NBCC 어워즈'에서 자서전·전기·비평·소설·논픽션·시 등 6개 부분에 걸쳐 '지난해 최고의 책' 수상자를 발표했다. 시 부분에선 유일하게 번역 시집으로 후보에 오른 김 시인의 '날개 환상통'(영어 제목 'Phantom Pain Wings')이 경쟁작 4개를 제치고 수상했다. 1975년 출범한 협회상 사상 한국 작가로는 첫 수상이며, 시 부문 상이 만들어진 뒤 번역 시집이 수상한 것도 최초다.

김 시인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시집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젠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며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줘서 고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 시집은 (번역가인) 최돈미 시인과 함께 썼기에 그와 함께 상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 시상식에서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을 영어 번역해 출간한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 편집자가 김 시인의 수상 소감을 대독하고 있다. NBCC 홈페이지 캡처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 시상식에서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을 영어 번역해 출간한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 편집자가 김 시인의 수상 소감을 대독하고 있다. NBCC 홈페이지 캡처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의 13번째 시집이다. 72편의 시가 실린 시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의 문법적 경계를 허무는 김 시인 특유의 '시적 실험'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에서 한국계 미국인 최돈미(62) 시인의 영역으로 출간됐으며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아 같은 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 들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이 시집을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대담하게 전쟁과 독재의 여파,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삶의 고통, 이를 극복하는 의식을 대안적 상상의 세계로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1979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해 독창적 어법과 전위적 상상력으로 현대 시의 지평을 넓혀 왔다. 첫 시집 '또 다른 별에서'(1981)부터 최근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까지 14권의 시집과 '여성, 시하다'(2017) '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 등의 시론집을 냈다. 여성의 몸과 언어를 탐구하며 여성으로서 쓰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여성, 시하다'에서 그는 "'시한다'는 것은 내가 내 안에서 내 몸인 여자를 찾아 헤매고, 꺼내놓으려는 지난한 출산 행위와 다름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았고,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2012·2019)과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2019), 스웨덴 시카다상(2021), 영국 왕립문학협회(RSL) 국제작가 선정(2022) 등의 상을 받으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광호(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평론가는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해외에 소개되고 상을 많이 받은 시인"이라며 "한국 문학의 동시대성을 획득했다"라고 했다.

'날개 환상통'을 번역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공동 수상한 최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2016) 등 김 시인의 작품들을 영어로 옮겼다. 이를 통해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2012·2019)을 받았고 한국 시집 최초로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2019)을 수상했다. 자신의 시집 '디엠지 콜로니'로 전미도서상(2020)을 받기도 했다.

NBCC는 미국의 언론·출판계에 종사하는 도서평론가들이 1974년 세운 비영리 단체다. 매년 3월 그 전 1년 동안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판된 모든 장르의 문학을 대상으로 최고의 책을 선정해 작가와 번역가 모두에게 상을 준다. 올해 1차 후보 12편에는 한국 작품으로 '날개 환상통'을 포함해 김금숙 그래픽노블 '나목'(The Naked Tree), 이성복 시론집 '무한화서'(Indeterminate Inflorescence) 등 3편이 올랐다.

시집 '날개 환상통'(왼쪽 사진)과 영어판 '팬텀 페인 윙스'. 문학과 지성사 제공

시집 '날개 환상통'(왼쪽 사진)과 영어판 '팬텀 페인 윙스'. 문학과 지성사 제공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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