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액이 ‘GDP의 3%’… 베트남 발칵 뒤집은 부동산 재벌에 사형 구형

베트남 검찰 "장기간에 걸친 정교한 수법"
감독 당국 등 공무원에 막대한 뇌물 뿌려
금리 등 감안, 은행 손해액 27조 원 규모

베트남 부동산 재벌 쯔엉미란(가운데)이 이달 5일 호찌민 인민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호찌민=AFP 연합뉴스

감독 당국에 막대한 뇌물을 뿌리고 베트남 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 사건을 벌인 현지 부동산 재벌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베트남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어, 법정 최고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 검찰 "반성 태도 없어"

20일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베트남 인민검찰은 전날 호찌민법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부동산 개발업체 반팃팟홀딩스의 쯔엉미란(68) 회장에게 횡령 및 뇌물공여 혐의로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가 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장기간 정교한 수법으로 중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가 매우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란 회장은 2012~2022년 측근과 공모해 계열 은행인 사이공상업은행(SCB)에서 304조 동(약 16조4,0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됐다. 검찰은 SCB 지분 91.5%를 소유한 그가 페이퍼컴퍼니 1,000곳을 이용해 2,500회에 걸쳐 허위로 대출을 신청하고 돈을 빼낸 뒤 사적용도로 사용했다고 봤다.

드러난 횡령 금액은 베트남 국내총생산(GDP·2022년 기준 4,000억 달러)의 3%가 넘는다. 베트남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사기 범죄로 꼽힌다. 검찰은 “횡령액에 대한 대출 이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으로 SCB가 입은 금전적 손실이 498조 동(약 26조9,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호찌민에 위치한 사이공상업은행(SCB) 본사 앞에서 한 고젝 운전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SCB는 부동산 개발업체 반팃팟 홀딩스 쯔엉미란 회장이 지분 91.5%를 소유했다. 호찌민=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범에게는 종신형 구형

검찰은 이날 란 회장의 횡령을 도운 SCB 전 경영진과 뇌물을 받고 범죄 사실을 눈감아준 감사 담당 공무원 등에겐 종신형을 구형했다. 공무원들이 받은 뇌물 액수는 520만 달러(약 70억 원)로, 감독 국장이 받은 액수만 500만 달러(약 65억 원)에 달한다. 횡령뿐 아니라 뇌물도 베트남 사상 최대 규모라는 말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언스트앤영, KPMG 등 세계 최고 회계법인도 감사에서 SCB은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최종 선고는 다음달 말 내려질 전망이다.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가 사회 각계 부정부패 척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건 까닭에, 본보기 차원에서 법원이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높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