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외래종 사슴 제주 노루 위협

입력
2024.03.20 14:22
수정
2024.03.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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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슴 등 최소 250마리 확인
몸·뿔 커 서식지 경쟁서 우위
노루 적정 개체 수 회복 더뎌

제주 한라산에 서식하는 붉은 사슴. 제주도 제공

제주 한라산에 서식하는 붉은 사슴. 제주도 제공

제주 한라산에 최소 250마리의 외래종 사슴이 서식하면서, ‘한라산의 상징인’ 노루가 위협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최근 발간한 조사연구보고서 제23호에 수록된 ‘중산간지역 외래동물(사슴류) 생태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한라산 사슴류 서식현황을 조사한 결과 외래종 사슴 250여 마리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철에는 제주마방목지에서 19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또 제주 중산간 목장지대에서도 사슴류가 10~20마리씩 집단을 이뤄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슴류는 중산간 지역에서 겨울을 지낸 후 봄이 되면 고지대로 이동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에 서식하는 사슴류는 노루를 비롯해 일본꽃사슴, 대만꽃사슴, 붉은 사슴, 엘크, 다마사슴, 고라니 등 7종이다. 대만꽃사슴과 일본꽃사슴은 각각 대만과 일본에, 붉은 사슴은 중국의 쓰촨성과 티베트에 주로 분포하는 외래종이다.

과거 제주에는 국내 고유종인 대륙사슴이 서식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모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제주에는 사슴이 확인되지 않았던 만큼 현재 관찰되는 사슴은 모두 외래종으로 추정된다.

외래종 사슴들은 인위적으로 제주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제주도에 멸종된 사슴을 되살리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3차례에 걸쳐 꽃사슴 등 13마리를 방사했다. 또 붉은 사슴, 엘크, 다마사슴은 농가에서 수익 창출과 관광자원화 일환으로 도입해 사육하다 관리가 소홀 등으로 탈출해 야생에 적응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꽃사슴류는 개체 수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분포면적도 넓어지고 있다. 사슴은 노루에 비해 몸의 크기가 2~5배가량 크고, 뿔도 커 노루와의 먹이경쟁, 서식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루는 경쟁 동물인 사슴을 피해 주변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 세계유산본부가 지난해 9~10월 도내 6개 읍면에서 표본조사한 결과 제주에 서식하는 노루의 개체 수는 4,800여 마리로 추정됐다. 이는 도 세계유산본부가 적정 개체 수로 제시했던 6,110마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노루 개체 수가 적정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외래종인 사슴류의 서식영역 확대 외에도 중산간 지역에 생활하는 들개들과 각종 개발 등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과정에서 차량에 치여 죽는 로드킬 사고 등 서식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는 “사슴류 집단이 커지고, 서식영역을 확대하면 한라산의 상징인 노루의 주요 서식지를 사슴류가 점차 잠식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한라산내 사슴류 서식현황과 생태특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 추진해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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