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논란마다 거짓정보 양산... '가짜'에 학을 뗀 시민들 "정치소식 아예 외면"

입력
2024.03.26 04:30
수정
2024.03.26 10:00
1면
구독

[가짜뉴스 기승: ①최근 동향과 그 폐해]
의사 집단행동·정치·연예인이 단골 가짜이슈
이슈 피로도 높여 국민 절반이 "뉴스 피한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8일째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공백 사태가 커지고 있는 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앞으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8일째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공백 사태가 커지고 있는 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앞으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말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떠돌았다. 잠시 일본에 가려던 전공의가 출국 금지됐다는 소식이었다. 이어 "의사를 노린 세무조사가 시작된다"거나 "파업 참여 전공의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한다"는 내용도 함께 퍼졌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남성은 전공의뿐 아니라 누구나 해외여행 전에 병무청 승인을 받아야 하고, 세무조사도 없었으며, 내란죄는 어불성설이었다.

다음달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주요 사회적 논란마다 거짓 정보를 전하는 '가짜뉴스'가 판치고 있다. 가짜뉴스의 폐해가 더이상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선택(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거짓 정보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회의감을 키운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아예 정치를 외면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풍조로 이어져,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가장 핫한 가짜뉴스는 '의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유통 중인 거짓정보 중에는,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해 주로 의대 정원 증원 및 의사 집단행동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고 한다. 25일 동영상 콘텐츠 맥락을 분석하는 인공지능(AI) 기업 '파일러'에 따르면, 이달 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간 자체 안정성 솔루션(AiD)을 통해 감지한 '의사 파업·증원' 관련 민감 콘텐츠는 총 84개로 집계됐다. 민감 콘텐츠는 공신력 없는 소스로 내용을 부풀리거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데, 전공의 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까지 확대하면 400여 개 영상 콘텐츠가 이런 식으로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 없는 영상 콘텐츠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양산된다. 최근 있었던 배우 한소희·류준열의 열애설과 관련한 민감 콘텐츠는 같은 기간 동안 237개나 감지됐다. 오재호 파일러 대표는 "이런 영상들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입거나 극단적으로는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로 확산하고 있다"며 "때로는 특정인에 대한 허위 영상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그 허위 영상의 대상이 나오는 광고가 붙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국가대표도 가짜뉴스 표적

이강인 선수와 관련된 가짜뉴스 영상을 여러 개 게재해 수익을 올린 유튜브 계정. 유튜브 캡처

이강인 선수와 관련된 가짜뉴스 영상을 여러 개 게재해 수익을 올린 유튜브 계정. 유튜브 캡처

유명인이 관계된 국민적 관심사엔 허위 내용을 담은 영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난달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 충돌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유통된 영상 중에는 '이강인, 손흥민 손 부러뜨린 영상 유출' 이라거나 '이강인 PSG 방출 임박, 국가대표 인생 끝났다'는 등 자극적 제목의 콘텐츠가 줄을 이었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런 가짜뉴스 영상의 조회 수는 높아만 갔다. 파일러에 따르면 아시안컵 관련 허위 영상은 195개 채널에서 361개가 올라왔는데, 이 가짜뉴스로만 총 7억 원의 수익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재호 대표는 "유튜브는 투명성이나 자체 통제력이 거의 없는 시장"이라며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이슈를 활용해 순식간에 조회수와 수익을 얻고 사라지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극적 테러 사건에서도 가짜뉴스는 창궐한다. 백주대낮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피습한 테러범들의 배후를 놓고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다. 실제 한 극우 유튜브 채널은 배 의원을 피습한 중학생을 향해 "이재명 당 대표에게 1억 원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다"고 비난했다. 경찰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거나 타인과 공모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고, 연예인 지망생과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인근을 배회하다 범행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에게 조사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아 비판'한 영상도 논란의 중심이 됐다. 46초 길이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무능하고 부패한 윤석열 정부는 특권과 반칙,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습니다"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있어도 민생은 없습니다"라며 양심 고백했다. 하지만 이 영상은 편집점이 맞지 않거나 발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허위조작 영상'이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제14차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한 위원이 틱톡에 올라온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딥페이크 영상 게시물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제14차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한 위원이 틱톡에 올라온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딥페이크 영상 게시물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사이버 레커는 가짜뉴스 확산 주범?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런 거짓정보들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사람들이 짧은 동영상(숏폼)에 익숙해지고 기성언론이 신뢰를 잃은 상황을 틈타, 각종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이슈마다 주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이버 레커는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유명인들이 연루된 사건사고를 핵심소재로 다루는 이슈 유통자들이다. 이들은 사실 확인을 거치기보다 높은 조회수를 통해 수익을 챙기려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최근 20~50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복수 응답)를 진행한 결과, 유명인 관련 사건·사고 정보를 접하는 곳으로 언론 보도(78.5%)가 가장 높았고, 이어 동영상 플랫폼 콘텐츠(64.2%), 사회관계장서비스(SNS) 및 블로그(49.8%) 등 순이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71.4%는 "사이버 레커가 제작한 콘텐츠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비율로 볼 때 사이버 레커의 영향력은 이미 언론과 비슷하거나, 특정층에서는 언론을 압도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얘기다.

다만 아직 다행스러운 점은 대부분 시민들이 사이버 레커를 통한 허위 정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이버렉카가 사회문제"라는데 동의한 응답자는 92%에 달했고, 이같은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돈벌이 외에 다른 것은 안중에 없는 비윤리적 태도'(92.6%), '제기하는 의혹을 검증 없이 중계하듯 보도하는 언론'(90.8%),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 콘텐츠 이용자'(90.1%) 등이 순서대로 꼽혔다. 연구를 진행한 양정애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유튜브 특성에 따른 문제라기보다, 검증이나 신뢰할만한 취재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영상. 틱톡 캡처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영상. 틱톡 캡처


"피곤하다" 뉴스 보기 싫어

가짜뉴스가 전파되더라도 대부분 시민들이 이를 '가짜'로 인식할만큼 분별력이 있고, 대부분 가짜뉴스가 사후적으로 바로잡히기는 하지만, 온라인상 가짜뉴스 창궐은 정치·사회 관련 뉴스에 대한 피로도를 높여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3 디지털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국민 2,003명 상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0%가 "의도적으로 뉴스를 피한다"고 답했다. 피하는 뉴스의 범주를 물은 결과 특히 국내 정치뉴스(62%)나 범죄·안전 관련 뉴스(21%)를 멀리한다는 답이 많았다. 옥현진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최근 뉴스 소비가 플랫폼 영상 기반으로 옮겨오면서 레거시 미디어(신문·방송·통신 등)보다는 자신이 지지하고 신뢰한다고 믿는 내용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며 "짧고 간략한 내용에 익숙해졌고 대립적인 내용이 부각되면서, 뉴스 기피 역시 함께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온라인 '민감콘텐츠'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온라인 '민감콘텐츠'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국내 주요 포털도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네이버는 실명 인증 계정에 한해 24시간 내 기사 댓글 20개만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의도적으로 클릭 수를 높이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매크로 활동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다음도 허위사실 및 비방 게시물 신고, 오보 및 권리침해 신고, 불공정 기사 모음, 정정∙반론∙추후 보도 기사와 관련한 배너를 게시하기로 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이달 8일 악의적인 선거 딥페이크 사용 방지를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회원사들이 선거 관련 허위 정보 신고 채널 운영, 딥페이크 주의 안내 문구 표시 등 운영 기조를 강화하도록 했다. 양정애 연구원은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를 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비롯해 관련 정책, 이용자 태도, 플랫폼 등 여러가지 측면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재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