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제한효소, 세균의 면역시스템
60년 전 유전자 가위로 변신
신약개발 혁명의 강력한 토대
2024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큰 선거들이 잇따라 진행됐거나 예정되어 있다. 1월에 대만 총통 선거, 3월에는 러시아 대선, 9월에는 일본 총리 선거, 10월에는 영국 총선,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당장 4월에는 우리나라도 총선을 치른다. 출마한 후보자와 그 지지자들에게는 특히나 선거와 전쟁이 많은 면에서 유사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 본질은 피아식별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우침의 세계에 들어가면 세상만사에 대한 분별이 없어지며 분별은 무명에 의한 망상이라는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분별 특히 아군과 적군에 대한 피아 구별은 전쟁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 활동에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피아, 즉 남과 나를 구별하는 기능은 세균에도 존재한다. 게다가 매우 오래전부터 진화해 온 기능인데, 세균의 피아식별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대표적 단백질들은 '제한효소'라는 유전자들이다. 세균들에도 사람처럼 유전정보 물질인 DNA가 존재하며 각각 세균들은 고유한 염기 서열 세트인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일 세균 속으로 자기 DNA가 아닌 다른 생물의 DNA가 들어온다면 세균 입장에서는 그 외부 DNA를 제거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연구 결과 그 기능을 세균은 제한효소라고 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들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균은 어떻게 특정 DNA 조각이 '나'인지 '남'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걸까. 세균이 개발한 방법은 자기 DNA의 특정 염기 서열에 대해 표식을 달아서 해당 표식이 없는 특정 염기 서열이 보이면, 외부 DNA로 식별하고 절단하는 방식이다. 이때 특정한 염기 서열을 인식하고 절단하는 단백질들이 바로 제한효소들이다. 즉 각각의 제한효소는 각각 특정한 염기 서열만을 인식하고 절단하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약 60년 전인 1962년에 알려진 이 현상은 생명공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비록 원래는 세균들의 피아식별 방어 시스템이지만 그 특성을 기반으로 특정 염기 서열을 가진 DNA만 선택해서 자를 수 있는 소위 '유전자 가위'를 처음으로 인류가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1967년에는 잘려진 DNA를 접합시켜 주는 연결효소들이 발견됨으로써 '가위'와 '풀'을 이용, 유전자를 임의대로 자르고 붙일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세균에 또 다른 피아식별 방어 시스템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바이오 업계가 또다시 흥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는 현상이다.
제한효소 시스템은 절단해야 할 염기 서열이 각각의 제한효소 유전자마다 선천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특성이 있다. 반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들은 세균이 살아가면서 자기를 침범했던 바이러스 DNA 조각의 염기 서열을 그때그때 보관해 두었다가 향후 어떤 DNA 조각이 외부 DNA인지 식별할 때 해당 정보를 꺼내서 활용한다는 점에서 핵심적 차이가 있다.
이런 기능은 세균 입장에서도 살아가면서 겪는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보다 효율적이고 적절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며, 이 원리를 도구로 활용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제한효소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가성비 높은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는 방법이다. 이 현상은 2007년 증명된 이후 약 5년 뒤인 2012년에는 세균뿐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하는 모든 생물체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형태의 '범용 유전자 가위 시스템'으로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이를 이용한 신약 개발 성공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는 더 새로운 세균의 피아식별 시스템이 발견되어 생명공학의 또 다른 분수령이 만들어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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