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대본 없는 2시간짜리 '원맨쇼'... 1만여 명 앞 "역대 최고" AI 칩 꺼내 든 젠슨 황

입력
2024.03.19 19:00
14면
구독

엔비디아, 실리콘밸리서 개발자 콘퍼런스
'현존 최고' H100 능가 차세대 AI 칩 공개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새너제이 SAP 센터. 오후 1시 정각이 되자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섰다.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의 개막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환호하는 참관객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이게 콘서트가 아니란 걸 잊지 말기 바랍니다."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으나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테크기업 행사에 SAP 센터 1만1,000여 석이 가득 찬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다. "애플의 아이폰 이벤트조차도 이렇게 큰 장소를 채우지 못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그 뒤 이어진 2시간은 '젠슨 황 원맨쇼'나 다름없었다. 평균 1시간 동안 주요 임원들이 돌아가며 무대에 오르는 다른 테크업체 행사들과 달리 그는 혼자 꼬박 2시간을 채웠다. 그의 앞엔 대본을 띄워주는 모니터도 없었다. 참관객 대부분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그의 입에 주목했다. 흡사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25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독일 출신의 한 기자는 이를 두고 "5년 전과 비교해 오늘의 광경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AI 열풍 최대 수혜자 엔비디아 행사 세계가 주목

이번 GTC는 엔비디아가 2019년 이후 5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한 행사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뒤엔 처음 열린 것이기도 하다.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주가도 3배 넘게 뛰어올랐다. 시가총액은 반도체 기업 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조 달러(약 2,600조 원)를 넘어섰다. 불과 2년 전까지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최고로 꼽혔던 이 회사는 이제 몸값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 됐다. 온·오프라인을 합쳐 전 세계 30만 명이 이번 GTC에 주목하는 이유다.

황 CEO는 이날 연설에서 현존 최고의 AI 칩으로 불리는 'H100'보다 연산 처리 속도가 크게 향상된 차세대 AI 칩 '블랙웰'을 공개했다. AI 반도체 시장 독보적 1위를 수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행사 마지막에는 엔비디아의 AI 칩과 소프트웨어로 구동되는 로봇을 깜짝 등장시켜 단순히 '반도체 기업'으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테크업계에선 "엔비디아의 현재 위상뿐 아니라 거대한 야심을 확인시킨 자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 메인 공연장의 약 1만1,000개 객석을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 참관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 메인 공연장의 약 1만1,000개 객석을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 참관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차세대 슈퍼칩, '파라미터 10조 개' AI도 구동

블랙웰은 AI 개발에 특화한 칩이다. 블랙웰 라인업의 대표 제품이라 볼 수 있는 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 'B100'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H100보다 연산 처리 속도가 2.5배 빨라졌다고 한다. AI 모델 훈련을 위해 H100을 사용할 경우 8,000개를 90일 동안 가동시켜야 했다면 B100을 쓸 경우 2,000개만으로도 같은 기간에 훈련이 가능하다고 엔비디아 측은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또 B100과 자체 개발한 중앙처리장치(CPU)를 결합한 이른바 '블랙웰 슈퍼칩'도 선보였다.GPU와 CPU를 하나로 묶으면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줄어든다. 블랙웰 GPU 72개와 CPU 36개를 묶은 슈퍼칩을 여러 개 결합할 경우 매개변수(파라미터)가 최대 10조 개에 이르는 AI 모델도 구동할 수 있다고 한다. 업계에선 오픈AI의 최신형 거대언어모델(LLM) GPT-4의 파라미터를 5,000억 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파라미터가 늘수록 AI의 성능은 향상된다. 엔비디아 블랙웰 슈퍼칩을 사용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GPT-4의 성능을 2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옆에 엔비디아가 훈련시킨 로봇이 서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옆에 엔비디아가 훈련시킨 로봇이 서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하나에 5만 달러... 그런데도 벌써 불붙은 확보 경쟁

엔비디아는 블랙웰 제품들을 연말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면서도 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 H100 가격이 개당 2만5,000~4만 달러에 형성돼 있는데, B100은 성능이 향상된 만큼 그보다 비싼 5만 달러(약 6,700만 원) 전후가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황 CEO는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아마존·메타·오픈AI 등이 이미 블랙웰을 '선주문'했다고 소개했다. 황 CEO는 "블랙웰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업들과 협력해 모든 산업에서 AI의 가능성을 실현해 줄 것"이라며 "우리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황 CEO는 이날 AI 칩 외에도 서로 다른 AI 모델을 서로 연결하고 쉽게 배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NIM)를 공개했다. 또 자체적으로 훈련시킨 로봇을 무대 위로 깜짝 등장시키고, 로봇용 블랙웰 칩과 로봇 플랫폼 구축을 돕는 소프트웨어도 선보였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황 CEO는 말하고, 행동하고, 물리 등 세상의 법칙까지 이해하는 로봇을 AI의 종착점으로 보고 있다"며 "로봇을 들고 나온 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