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200원→6000원…손 떨리는 사괏값 만든 건 '유통'

입력
2024.03.18 08:00
수정
2024.03.18 18:2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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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무죄]
<상> 금사과 미스터리
경매 등 거치며 2배 뛴 사과
농가 돌아오는 돈은 3분의 1뿐
농가 "유통업체가 물량 보관 중"
정부 납품단가 지원에 풀 유인 없어

10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작황 부진 등으로 가격이 오른 사과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10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작황 부진 등으로 가격이 오른 사과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비싸서 사 먹기 겁날 정도라는 ‘금사과’ 명명부터 다른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플 플레이션’까지. 도마에 오른 사과를 두고 1년 내내 사과를 키운 생산자들은 고개를 들 수 없다. 불가피한 이상기후 영향도 있지만 "사과는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유통 과정이 사괏값을 2배 넘게 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농가와 도매시장 등 현장을 직접 돌며 증언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유통 과정을 따져 봤다.

사과, 왜 비싼가

8일 경북 의성군 소재 한 사과농장에 탄저병, 무름병 등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과가 밭에 나뒹굴고 있다. 의성=조소진 기자

8일 경북 의성군 소재 한 사과농장에 탄저병, 무름병 등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과가 밭에 나뒹굴고 있다. 의성=조소진 기자

올해 금사과의 근본 원인은 날씨다. 오락가락했던 작년 날씨 탓에 작황이 좋지 않아 사과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평년 대비 22% 줄었다. 하지만 줄어든 생산량에 비해 도· 소매가격은 더 많이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15일 사과(후지·상품) 10㎏당 도매가격은 9만900원으로 1년 전보다 121.7% 급등했다. 대형마트 등에서 파는 소매가격(10개=약 2.6㎏)은 2만7,424원으로 1년 전보다 19.5% 올랐다. 그나마 소매가격은 개당 사과 가격이 5,000원까지 치솟자 정부가 230억 원 규모의 할인 지원을 펼쳐 낮춘 상승률이다.

2022년 발표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품목별 유통실태 보고서. 사과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통해 소비자 손에 들어온다. 1년 간 저장할 수 있어 각 단계별로 산지유통센터(APC)에 저장될 수 있다. 이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사과 유통구조>그래픽과 같다.

2022년 발표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품목별 유통실태 보고서. 사과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통해 소비자 손에 들어온다. 1년 간 저장할 수 있어 각 단계별로 산지유통센터(APC)에 저장될 수 있다. 이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사과 유통구조>그래픽과 같다.


사과 유통구조. 그래픽=김대훈 기자

사과 유통구조. 그래픽=김대훈 기자

유통 단계별 가격은 어떨까. aT가 조사한 2022년 11월 유통비용 명세표를 보면, 단계별 사과 가격은 ①생산자(2,200원)→②산지 공판장(2,490원)→③도매시장(3,400원)→④대형 유통업체·소매업체(4,050원)→⑤소비자(6,000원) 순으로 뛰었다. 예컨대 경북 의성군 사과농장은 사과를 딴 뒤 근처 농협 공판장으로 가져간다. 이곳 도매법인은 사과를 세척하고 분류한 뒤 경매에 붙이는데, 경락가의 4~7%가량을 수수료로 받는다. 경매가 끝난 뒤 포장된 사과는 대형 유통업체 창고로 가거나, 도매시장을 거쳐 소매시장으로 향한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도소매가격은 왜 더 올랐나

8일 경북 안동시 농산물도매시장(산지 공판장)에 경매가 끝난 사과가 상자에 담겨 있다. 이 사과는 20㎏에 12만5,000원에 거래됐다. 안동=조소진 기자

8일 경북 안동시 농산물도매시장(산지 공판장)에 경매가 끝난 사과가 상자에 담겨 있다. 이 사과는 20㎏에 12만5,000원에 거래됐다. 안동=조소진 기자

도소매가격의 상승은 유통비용 탓도 있지만, 시스템이 촉발한 면이 적지 않다. 작황이 좋지 않자 대형 유통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섰다. 한 대형마트 바이어는 “마트에 사과가 달리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며 “아무리 비싸도, 다른 거래처 물량을 뺏어서라도 물량을 확보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대형마트→소매→도매 순으로 수요가 크게 늘었고, 이에 경매로 거래가 이뤄지는 도매가격부터 폭등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중도매인과 대형 유통업체는 마진을 비율로 붙여 이윤을 남긴다.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유통 단계별로 10~30%씩 마진을 남기는데, 가격이 오르면 유통 마진도 더 많이 남는 구조”라며 “전년 같은 기간과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농가에서 조기 출하를 한 데다 못난이 과일까지 취급돼 공판장에 나오는 물량은 비슷한데, 유통 마진 때문에 연쇄적으로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그 많던 사과는 어디로 갔나”

8일 찾은 경북 안동시 농산물도매시장(산지 공판장). 농가가 이곳에 가져와 경매가 끝난 사과는 대형 유통업체, 도매시장 등으로 이동한다. 안동=조소진 기자

8일 찾은 경북 안동시 농산물도매시장(산지 공판장). 농가가 이곳에 가져와 경매가 끝난 사과는 대형 유통업체, 도매시장 등으로 이동한다. 안동=조소진 기자

실제로 사과가 본격 출하되기 시작한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 초까지 현지에서 나온 사과 물량은 오히려 소폭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경북 안동도매시장(농협 산지 공판장+합자회사) 거래 현황을 보면, 작년 10월 1일부터 올해 3월 8일까지 거래된 물량은 총 8만5,000톤(3,650억 원)이다. 안동도매시장은 전체 도매시장 물량의 50%가량이 거래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전년 같은 기간(8만3,000톤)보다 물량이 2% 더 거래된 것이다. 다른 도매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최근 1년간 사과의 64.6%는 경북 안동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됐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

최근 1년간 사과의 64.6%는 경북 안동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됐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

본보와 만난 농가, 도매법인 등 생산 관계자 9명은 “업계 큰손인 대형 유통업체들이 사재기해 간 사과가 산지유통센터(APC)에 묶여 풀리지 않아 가격이 계속 비싼 것”이라며 “사과 주산지가 아닌 다른 거점 APC나 민간이 운영하는 APC에 유통업체의 계약물량이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보관된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실상 '깜깜이' 상태다.

그나마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본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583개 APC 중 사과를 보관하고 있는 곳은 10일 기준 90곳이다. 사과 주산지가 아닌 충북 충주(2,639톤), 경남 거창(1,053톤), 충남 예산(935톤)에도 사과가 쌓여 있다. 정부가 현장 점검을 하지 않다 보니 업계에서는 "APC가 실제 비축물량보다 30% 정도 줄여 보고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재정을 풀어 유통업체에 직접 할인 지원을 해 주고 있어 업체가 APC에 묶인 물량을 풀 유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1,000원으로 시작한 정부의 사과 납품단가 지원은 올 초 2,000원으로 올랐고, 4,000원으로 더 오른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할인 지원을 해 주니, 안 그래도 비싸게 산 사과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지 않겠냐”며 “APC 사과 보관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지원을 계속하면 정부가 대형마트 배만 불려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관련 영상

[사과, 무죄] 글 싣는 순서

<상> 금사과 미스터리

<하> 사과만의 문제 아니다


안동= 조소진 기자
세종= 변태섭 기자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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