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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 2024년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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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왜 우리는 그 많은 반도체를 한두 개 나라에서만 사야 하나. 이건 지정학이 아니라 집중화 문제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12일 필리핀 마카티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 발언이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를 강화하고 한국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남아 국가 투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시계를 41년 전으로 돌려 보자. 집적 회로와 마이크로칩의 발명가이자 인텔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는 동업자 앤디 그로브에게 “한국인과 함께하면 그들이 일본보다 더 저가로 판매할 테니, 일본이 덤핑으로 세계 D램 시장을 독점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며 결국 일본의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이런 계산 속에서 삼성과 1980년대 반도체 합작투자에 참여한 미국 기업 중 하나가 됐다.
□1983년 2월 8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은 “삼성은 반도체를 만들 것이며, 적어도 1억 달러를 쓸 것”이라고, 후일 ‘2·8 도쿄선언’으로 명명된 계획을 공개했다. 당시 D램 분야 선두 주자인 일본 미쓰비시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냉소를 극복하고 삼성이 D램 분야 세계 최고가 된 데는 초기 인텔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41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또 한 번 주요 반도체 생산시설 이전 방침을 세운 듯하다. 80년대 한국 반도체의 우군이던 미 인텔과 마이크론은 현재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바뀌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기로에 서 있다. 40년 전 일본처럼 ‘No(노)라고 말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취한다면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낙담할 필요도 없다. 생산시설의 미국과 동남아 분산은 피할 수 없겠지만, 핵심기술을 지키며 생산시설 분산 과정에서 이익을 키울 수 있는 고차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제2의 ‘2·8 선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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