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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용 가위도 금지"… 이스라엘, 인도적 지원 훼방에 창고 폭격까지

입력
2024.03.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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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필터·마취제·인공호흡기 모두 금지
'이중 용도 품목' 막는다지만 "자의적 기준"
공격에 구호 인력 사망… "국제규범 무시"

가자지구 남부 라파 난민 캠프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구호단체가 제공한 식량을 먹기 위해 모여 있다. 라파=EPA 연합뉴스

가자지구 남부 라파 난민 캠프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구호단체가 제공한 식량을 먹기 위해 모여 있다. 라파=EPA 연합뉴스

'마취제와 마취용품, 산소 실린더, 인공호흡기, 태양광 조명, 정수 필터와 정수제, 대추야자, 침낭, 항암 약품, 산모용 키트, 그리고 의료용 가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반입을 금지했다고 알려진 구호 물품들이다. 표면상 '군용으로 쓰일 수 있어서'라는 이유를 대지만, 자의적인 기준을 내세운 '구호 방해'가 명백하다고 구호단체들은 말한다. 인도적 지원에 어깃장을 놓는 것도 모자라 이스라엘은 구호 창고마저 폭격을 가하며 더욱 국제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스라엘 '과잉 감시'에 구호품 전달 난항

1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12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아동용 의료 키트에 포함된 가위 때문에 진입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라자리니 위원장은 "(가자지구 거주민들의) 생존이 달려 있는데 전달되는 것은 거의 없고 제한만 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구호품을 감독하는 이스라엘 기관 팔레스타인 민간협조관(COGAT)은 금지 조치를 보고받지 못했다며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호품 상습 거부'를 지적한 사람은 라자리니 위원장만이 아니다. 지난 6일 로세나 알린-칸 영국 국회의원도 X에서 COGAT가 구호품 중 1,350개의 정수 필터와 2,560개의 태양광 조명 반입을 거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영국 정부가 공급하는 정수 필터가 어떤 위협을 갖고 있나"라고 비판했다.

가자지구에 전달될 구호품을 실은 국제 구호선 오픈암스호가 12일 키프로스 라르나카 항구를 떠나고 있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나날이 고조되고 있으나 이스라엘 당국이 가장 효율적인 육로 수송을 가로막으면서, 국제사회는 구호품 해상 수송·공중 투하 등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가자지구에 전달될 구호품을 실은 국제 구호선 오픈암스호가 12일 키프로스 라르나카 항구를 떠나고 있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나날이 고조되고 있으나 이스라엘 당국이 가장 효율적인 육로 수송을 가로막으면서, 국제사회는 구호품 해상 수송·공중 투하 등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명분은 군용으로도 쓰일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 반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여 명의 구호단체 활동가와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CNN방송에 "이스라엘의 통제는 자의적이고 모순적인 기준으로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이스라엘은 장난감이 골판지가 아닌 나무 상자에 들었고, 침낭에 지퍼가 있고, 위생 키트에 손톱깎이가 포함됐다는 등의 이유로 구호물자를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NYT도 이스라엘 비영리단체 '기샤'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의 금지 목록 중에는 수천 개 품목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도 있고, 거부된 품목 다수는 명시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기샤는 품목 하나만 문제가 돼도 트럭 전체가 거절될 수 있으며, 때로는 거부된 품목과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구호창고도 공격" 비판 가열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지난 3일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엘발라의 해안도로에서 이스라엘 공습에 피격돼 부서져 있다. 데이르 엘발라=AFP 연합뉴스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지난 3일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엘발라의 해안도로에서 이스라엘 공습에 피격돼 부서져 있다. 데이르 엘발라=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한술 더 떠 가자지구의 구호 창고까지 폭격 대상으로 삼으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 구호창고를 공격해 구호 요원 최소 1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했다. UNRWA는 "시설 손상은 미미하지만 인명 피해는 상당히 크다"며 일부 활동가가 중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구호 훼방은 국제사회 합의에도 반한다. 국제 규범 국제인도법(IHL)은 '전쟁 당사국의 민간인 구호 협조 의무'를 명시했다. 라자리니 위원장은 "(이스라엘이) 국제인도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유엔 시설, 호송대, 구호 인력에 대한 공격이 다반사가 됐다"고 분노했다. 유엔 구호 책임자 마틴 그리피스도 X에서 "그들은 보호돼야 하고, 이 전쟁은 멈춰야 한다"고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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