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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보다 화이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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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사주·교사했다는 의혹으로 경찰이 수사 중이다. 앞서 의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집단이탈에 동참하지 않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근무지와 실명이 담긴 리스트가 공유돼 논란이 커졌다.
□ 익명 커뮤니티에 ‘복귀하고 싶은 전공의’라고 소개한 글을 보면 “업무개시명령, 3개월 면허정지보다 제가 속한 집단이 더 무섭다.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온갖 눈초리와 불이익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토로했다. 폐쇄적인 의사사회 특성을 보여준다. 병원에 남은 전공의를 ‘참의사’라 비꼬는가 하면, 의대 교수들에게 “사직하든가 닥치고 당직이나 해라”는 반응이 난무하는 식이다. 2020년 파업 때는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배신자’로 불렸다고 한다.
□ 작년 10월 미국 명문 대학들은 유대인 혐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기부 철회 압박에 시달렸다. 하버드대 학생모임 등이 '가자전쟁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월가의 ‘취업불가’ 조리돌림 명단에 올랐다. 블랙리스트의 기원은 17세기 영국왕 찰스 2세가 아버지 찰스 1세의 처형판결에 관여한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만들어 복수한 데서 비롯됐다. 역대 정부들도 이런 문제로 깊은 상처를 남겼는데, 박근혜 정부 때 진보성향 문화예술인들을 지목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대표적이다.
□ 집단 내 왕따나, 권력을 이용해 생업을 박탈하고 공포로 괴롭히는 것 모두 저열한 짓이다. 반면 화이트리스트는 배려나 지원대상을 말한다. 우리 편을 구분한다는 점은 역시 부정적이지만 ‘화이트’란 단어는 우호적이고 밝은 이미지다. 컴퓨터 해커의 공격을 차단하는 ‘화이트해커’도 이에 해당한다. 오스카 쉰들러가 살려낸 유대인 명단인 '쉰들러 리스트'가 진정한 화이트리스트일 것이다. 의사가 사회적 존경 대상에서 기득권 유지에 매몰된 일개 직업군으로 추락한다면 모두의 손해다. 전공의판 블랙리스트가 던진 배제와 낙인찍기 세태에 국민은 답답하다. 정부의 해결능력에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다. 국민과 환자들은 하루빨리 훈훈한 소식이 들리길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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