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숨 막혀 평생 사는 스코티시 폴드.. 조금이라도 웃게 해줘야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이 아마 우리 집에서 숨소리가 제일 클 거예요. 밤에도 얘가 코 고는 소리가 가장 클 거고요.
처음 그 말을 듣고 ‘과장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본 고양이 ‘일라’(11세 추정ㆍ스코티시 폴드)의 숨소리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는 수화기 너머에서도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일라의 보호자 이상욱, 박미정 씨 부부는 “사람으로 치면 일라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사는 것”이라고 설명할 정도였습니다.
일라의 호흡을 방해하는 질병은 ‘비공협착’과 ‘연구개 노장’. 콧구멍(비공)이 좁아지다 못해 막혀 있는 상태를 비공협착이라 부르며, 비강과 구강을 나누는 입천장 뒤에 있는 부드러운 점막(연구개)이 늘어나 호흡을 방해하는 증상이 연구개 노장입니다.
'두 상태 모두 주둥이가 극단적으로 짧은 단두종 개와 고양이에게 잘 나타나는 증상이라 ‘단두종 증후군’이라고 통칭되기도 합니다. 7년 가까이 일라를 지켜본 우리동생동물병원 김재윤 원장은 “사실 이건 질병이라고 말하기 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종 특성상 발생하는 선천적 기형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단두종 증후군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술뿐입니다. 좁아진 콧구멍을 넓혀주는 ‘비공협착술’과 늘어난 연구개를 잘라주는 ‘연구개절제술’입니다. 일라는 이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일라의 연구개는 다시 늘어났고, 비공은 막혔습니다. 김 원장은 “고양이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 비공협착술을 받으면 수술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일라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호흡기 구조가 더욱 숨쉬기 힘든 구조였다는 뜻입니다.
일라가 상욱 씨 부부 앞에 나타난 때는 지난 2017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초여름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상욱 씨가 창문을 열어둔 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일러실에 들어온 겁니다.
처음에는 낮에 들어와 구경만 하고 나가서 먹을 걸 좀 챙겨줬어요. 그렇게 우리 집 구경을 좀 하더니 다시 나갔어요. 그런데, 저녁에도 또 오더라고요. 그러고는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어요.
그렇게 난데없이 고양이를 키우게 된 상욱 씨 부부. 보일러실에서 만났으니 이름을 ‘일라’라고 지어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눈에 봐도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는지, 부부는 곧바로 일라를 데리고 우리동생을 찾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일라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원장님은 (일라가) 3,4세쯤 된 것 같고 출산 경험이 되게 많다고 하셨어요. 자궁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허피스가 심해서 폐렴까지 진행될 정도였어요. 결국 입양하자마자 한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죠.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확답할 수는 없었지만, 병원 진단 결과는 일라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미뤄 짐작이 가능했습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일라는 심지어 체격도 왜소해 중성화 수술조차 받을 수 없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결국 살을 찌우고 나서야 중성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욱 씨는 “(일라의) 체격은 지금도 작은 상태”라며 “완전 땅꼬마”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작은 일라에게 수술과 마취는 거의 일상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입양 6개월 만에 일라의 호흡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겁니다. 코로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입으로 가쁘게 개구호흡을 하는 일라를 보며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상욱 씨는 일라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병원 진단을 받고서야 일라의 상태가 구조적으로 숨을 쉬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수술을 받은 뒤 3개월은 매우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상욱 씨는 “평소에는 아주 조용하고 가만히 있던 일라가 수술을 받고 나서는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도 붙임성을 보이고, 갑자기 ‘우다다’를 하며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자 활력을 되찾은 것으로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곧 다시 일라의 호흡곤란은 재발했고,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김 원장은 “임상 경험상 고양이는 피부를 절개하더라도 회복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개에 비해 수술 효과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두 차례 같은 경험을 하자 아낌없이 모든 걸 주려 했던 상욱 씨도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일라가 전신 마취를 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해요. 수술이 아니어도 스케일링 때문에 전신 마취를 했었는데, 마취가 깨고 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동물병원에서 돌아오는 이동장 안에서 소변 실수를 할 정도였거든요. 그때 느꼈죠. ‘아, 안 되겠다. 이건 우리 욕심이다.’
수술에 회의적인 건 김 원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어릴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 나이에 수술을 해가며 잠시 숨통을 틔워주는 걸 굳이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현 상황에서 일라를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상욱 씨 부부 역시 이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허피스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수술을 받는 동안 중간중간 허피스가 재발하며 일라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김 원장은 “허피스는 보통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재발한다”며 “체구가 작고 약한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병을 안고 살아가는 만큼 보호자들도 일라에게 최대한 집중하고 있습니다. 숨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문제를 알아차릴 만큼 7년 차 고수가 되어버린 상욱 씨는 “허피스가 왔다 싶으면 나는 소리가 있다”며 “거위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나면 병원에 설명하고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받아 먹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 호흡기가 마르지 않도록 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라는 매일 상욱 씨 곁으로 다가와 잠들곤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일라를 보면 상욱 씨는 매일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네요.
일라가 소위 말하는 ‘츤데레’거든요. 어마무시하게 달라붙어요. 아침에 눈뜨면 만져달라고 하고, 밤에 잘 때면 팔베개를 해달라고 하죠. 그렇게 평생 만져주고 있어요.
우리 집에는 일라 포함 셋뿐이니까, 이 셋이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그저 이 생활이 조금씩 더 지속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예요.
▼▽'반려 고수'의 노령동물 보호 팁 만나보기▼▽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