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의사 선생님들께

입력
2024.03.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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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1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4월, 살면서 처음으로 대학병원에 내원했다. 사실은 '실려' 갔다. 버티고 버텼건만, 임신 35주 차에 결국 코로나 확진을 받고 격리해제를 기다리던 중 양수가 터졌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 감염자를 엄격하게 관리했던 시기.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출동한 구급대원 4명이 거실 바닥에 앉아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리며 '환자를 받아달라'고 읍소해 준 지 2시간 만에, 서울에서, 그것도 대학병원에서 이송 승인을 받았다. 감염 임신부들이 병원 뺑뺑이를 돌다가 끝내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했다는 뉴스가 속속 보도되던 때였다.

홀로(남편도 전날 확진됐다.) 음압 병실에서 지낸 며칠, 의료진들의 직업의식 그 이상을 봤다. 당직 산부인과 교수는 새벽 내내 뱃속 아이 상태를 살핀 후에도 '확진 산모는 제왕수술만 가능하다'는 방침에 해가 뜨자마자 수술에 임했다. 마취 때 귀에다 대고 연신 "걱정 말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리던, 확진 우려로 아이를 낳고도 얼굴 한번을 못 본 나를 찾아 위로하던, 진심 어린 전공의들의 표정도 눈에 선하다.

퇴원할 때쯤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음압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착용하고 나갈 땐 모두 벗어 폐기해야 했다. 돌봐야 할 다른 산모도 많았을 텐데, 간단히 몸 상태 한번 물어볼 때도 그렇게 했다. 감사함을 전할 길이 없어,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마음 깊이 새기는 걸로 대신했다.

길고 긴 팬데믹이 그나마 버틸 만했던 건 이렇게 이 악물고 의료 현장을 지켜준 의료진 덕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다. 하루에 수십 번씩 '어떤 환자가 더 죽기 직전인가'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돌봤다(서울대병원 코로나19 백서 중)는 대형병원 의사들, 운영하는 의원 문까지 닫고 자진해 의료 취약지로 내달렸던 개원의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자, 마치 제 집단이 아닌 모두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구는 의사들의 모습은 그래서 맹랑하다. '의사 선생님들'을 향한 신뢰는 그 수가 늘고 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의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부와 의사 집단의 엄포 뒤로 환자들의 절규가 들린다. 식도암 4기를 진단받고도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 구순구개열로 분유도 제대로 못 삼키지만 수술이 취소된 생후 9개월 아이, 강제 퇴원 후 사망한 암환자까지. 오늘, 그리고 지난 3주간 놓친 환자들이 가슴에 박히지 않을 의사는 없다고 굳게 믿던 와중에, 복귀한 전공의들에다 대고 '참의사'라고 조롱하는 내부자들마저 나타나니 절망이 정말 이런 건가 싶다. 재차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끄집어다 언급할 낭만의 상황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들의 선서가 그렇게 헛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의사들이 주장하는 열악한 교육 여건, '낙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비해 정부의 로드맵이 구체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와 생명을 볼모 삼아 의료 현장을 떠나는 방식의 투쟁은 납득의 대상이 아니며, 정부안의 세부 항목을 함께 머리 맞대 고민하는 것도 의료계의 몫이라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무엇보다 여전히, 간절하게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환자들의 애타는 심정을 부디 헤아려 주길 바란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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