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지연 해결 위해, 법관 정원 최소 11%는 늘리자"

입력
2024.03.2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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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 인터뷰]
출범 10주년 맞은 사법부의 싱크탱크
"사건 복잡해져... 1인당 업무부담 증가"
"로펌과 경쟁 위해 법관 급여도 올려야"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이 6일 경기 고양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이 6일 경기 고양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2014년 3월 10일 대법원 산하 독립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연구원)이 문을 열었다.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책적으로 설계하고, 사법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법원 내부의 공식 '싱크탱크' 격이다.

10년간 이 연구원은 무려 183개의 보고서를 생산하며 △사법부 당면 과제 해결과 △미래 청사진 제시 등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수행했다. 출범 1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사법부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법정책연구원의 박형남(64·사법연수원 14기) 원장을 6일 경기 고양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한국일보와 박 원장이 나눈 일문일답.

2014년 3월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정책연구원 개원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2014년 3월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정책연구원 개원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사법정책연구원은 어떤 기관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관과 법학자가 함께 연구하는 싱크탱크다. 연구 과제는 법원 내·외부의 공모를 받아 선정하고, 연구 성과는 사법부의 재판, 정책, 입법 등에서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10년간 판사와 법학자들이 협업하는 체계와 연구 방법에 관한 노하우들이 쌓였다. 최근에는 기존의 비교법적 연구에서 더 나아가 통계 검증이 뒷받침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미 있는 연구를 꼽자면.

"재판 지연의 실태와 해결법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과거보다 재판 부담이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복잡한 사건이 많아져 심리와 판결 작성에 요구되는 시간이 증가한 반면, 법관 수(현재 법에 규정된 법관 정원은 3,214명)는 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이었다. 법조일원화(경력법관) 제도 때문에 법관이 고령화되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착수한 추가 연구에선 법관 1명당 현실적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량과 업무방식 개선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이 6일 경기 고양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이 6일 경기 고양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법관은 어느 정도 늘어야 할까.

"사건 수는 조금 줄었지만 법관이 살펴야 하는 기록의 두께가 늘어나는 등 사건 자체가 어려워져서 업무 부담은 더 늘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법관 개인의 삶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재판에만 몰입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소 370명(정원의 11.5%) 정도는 더 들어와야 숨통이 트일 것이다."

-법관 늘린다고 우수한 인력이 들어올까.

"요즘에는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대형 로펌과 경쟁하려면 급여를 대폭 상승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급여를 얼마나 올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사례 등을 토대로 급여 상승과 우수 법관 유치의 상관관계 등을 연구하려고 한다."

-신규임용되는 법관의 평균 연령이 30대 중후반이다. 법관 고령화 문제는 어떻게 푸나.

"벨기에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법원이 고령화되어 업무 처리 속도는 느려지는 반면 우수한 법관이 들어오지 않아, 벨기에는 직무에 맞게 최소 법조 경력을 달리 요구하는 것으로 법을 바꿨다. 배석 판사는 3년 이내, 단독 재판부 법관은 7년, 합의부 재판장은 10년의 경력을 요구한다고 하더라. 우리도 이렇게 가야 한다. 우수한 판사가 들어오지 않으면 피해를 받는 건 국민이다."

-재판 지연 말고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

"소통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국민참여재판 확대 외에 재판과 법관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판결문도 쉽고 친절하게 써야 한다. 지난해 '법조일원화 시대에 걸맞은 1심 판결문 작성방식 개선방안'을 연구했고, 올해는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엄상필·신숙희 신임 대법관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엄상필·신숙희 신임 대법관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연구원의 앞으로 과제는.

"우리 연구의 예상 독자는 시민보다는 법원 관계자, 법학자, 국회의원 등이다. 다만 시민과의 소통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시민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는 내용을 요약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최근엔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의 실무상 쟁점에 대한 설명 영상 등을 게재했다. 연구 인력을 증원해서, 주목받지 못했던 국내·국제 사법 연구도 해야 한다. 법학을 넘어 인문학적 감수성이 뒷받침이 되는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 인력이 부족해 현안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건 아쉽다. 단기 연구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연구까지 수행하는 연구원이 사법부의 청사진을 제시하려면 연구 인력이 2배 이상 늘어야 한다."

박준규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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