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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까지 움직여 "환생한 듯" 떠나보낸 내 강아지와 똑 닮은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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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나를 만들 때도 다양한 레시피가 있습니다. 하물며 복잡다단한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생채기가 생긴 내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고 싶은 분들께 다채로운 치유·회복 비법을 소개합니다.
키링, 아트돌로 반려동물 재현하는 사람들
“가장 예뻤던 사진 보며 되살리는 기분…
고통스런 임종 아닌 행복했던 기억 떠올라”
"어머, 어떡해. 진짜 아롱이 같잖아."
염혜연(46)씨가 양모 펠트로 만든 강아지 얼굴을 보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아롱이는 그가 18년간 함께 산 반려견의 이름이다. 아롱이는 3년 전 염씨의 곁을 떠났다.
그가 아롱이의 사진을 보며 만든 건 양모 펠트 열쇠고리(키링)이다. 동물의 털이나 인조 섬유 등에 열이나 수증기, 압력을 가해 뽑아낸 털 뭉치로 만드는 반려동물 공예 중 하나다. 실제 자신의 반려동물과 같은 크기의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아트돌도 있다.
반려동물 공예가 펫로스 증후군을 달래는 방법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염씨를 만난 곳도 경기 구리시에 있는 반려동물 공예 전문 공방이었다. 공방 곳곳에는 주먹보다 작은 양모 펠트 키링부터 양모 실로 반려동물을 수놓은 액자, 미니어처 크기의 인형, 실물 크기로 만든 아트돌까지 다양했다. 특히 아트돌은 털의 느낌이나 표정, 움직임까지 실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생생했다.
염씨도 아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1년여간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집에 귀가하기가 두려웠을 정도다. "잘 때도 데리고 자던 아롱이를 다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니, 집에 들어갈 때가 제일 슬프더라고요." 염씨에게 아롱이는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가족"이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반려동물 공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을 찾았다.
공방에선 반려동물 공예지도사 이은지(35)씨가 반려동물 양모 펠트 인형 '원데이 클래스'를 이끌고 있었다. 이씨의 직업은 따로 있지만, 지난해 반려동물양모펠트지도사 2급 자격증을 따 부업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 공예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주말이나 퇴근 후 수업을 한다. 반려동물아트돌지도사 2급 자격도 취득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 역시 펫로스 증후군이 계기였다. 이씨는 13년간 함께 산 반려견 슈나를 5년 전 떠나보냈다. 슈나의 털을 직접 다듬고 싶어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 슈나가 죽은 뒤 3년 동안은 사진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이씨는 "우연히 반려동물 공예 관련 자격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나의 펫로스 경험으로 누군가에게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어 보람차다"고 말했다. 그는 "금액만 따지면 크게 남는 건 없지만, 먼저 경험한 자로서 슬픔에 빠진 이들을 도우면서 나도 위안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었던 이들은 실제 모습처럼 재현한 아트돌이나 반려동물 공예를 보면서 상실감을 달랜다.
고선영(35)씨는 13년간 함께 살았던 반려견 봉지가 3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봉지를 꼭 닮은 아트돌을 주문했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봉지의 아랫니와 안쪽으로 휜 다리까지 세밀하게 구현됐다.
고씨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호피 무늬 후드티를 입혀놓고 봉지가 늘 삐딱하게 메던 산책 가방도 인형에 걸쳐주곤 한다"며 "인형을 머리맡에 두니 봉지와 함께 자는 느낌이 들어 잠도 잘 자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이 아트돌은 또 다른 봉지인 셈이다. 여행을 갈 때 아트돌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아트돌로 받은 위안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관련 자격증을 딴 뒤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한 반려동물을 인형이나 장식품으로 만들면서 위로와 치유를 받기도 한다. 염혜연씨도 자기 손으로 만든 아롱이 키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롱이를 생각하면 다리의 근육이 다 빠져 힘이 풀린 채 누워있던 마지막 순간만 떠오르곤 했어요. 그런데 아롱이를 양모 펠트 인형으로 만들면서 가장 예뻤던 사진, 기쁨을 나눴던 추억, 건강했던 모습을 보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웃으며 아롱이를 회상하게 돼요." 그는 "아롱이의 분신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공예지도사 이은지씨는 "디테일을 살려 생생하게 만들려면 여러 각도에서 찍은 반려동물의 사진을 보고 또 보게 된다"며 "그러다 보면, 사별의 슬픔이 아닌 자신과 함께한 반려동물의 생애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엔 반려동물의 사망 이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려 아트돌 제작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먹만 한 크기로 만드는 양모 펠트 인형은 2, 3시간 수업을 들으면 제작이 가능하다. 실물 크기에 맞춰 제작하는 아트돌은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관절까지 움직여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개 전문가에게 의뢰하지만, 관련 자격증을 따면 자신이 만들 수 있다. 메모리얼 스톤이나 주얼리로 만들어 반려동물을 추억하는 이들도 있다. 털이나 유골, 발톱 등 생체 원료를 혼합해 제작한다.
펫로스가 주는 슬픔의 크기는 간단치 않다. 지난해 가을 반려묘 도울이를 떠나보낸 이슬기(35)씨는 사별의 아픔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너무 큰 고통을 겪으면 가슴이 실제 아프다는 걸 처음 느꼈다"며 "심장 위에 돌을 얹은 것 같은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사후 한두 달은 수면장애도 앓았다. 자책을 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펫로스 증후군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우선 반려동물의 죽음을 인정하고 본인의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2018년 전국 최초로 펫로스심리상담센터를 연 한국임상심리학회 소속 임상심리전문가 조지훈 센터장은 "힘들지만 반려동물을 이전처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면서 교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려동물 공예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별의 과정에서 가장 좋지 않은 건 회피"라며 "반려동물 공예를 하면서 사별한 동물에게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실의 감정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교수는 "혼자서 짊어지기엔 사별에 따른 아픔의 무게는 너무 크다"며 "다른 이들과 경험을 나누면 좀 더 수월하게 추모하며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마음에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이나 추모 의식 치르기, 기념비·앨범 제작도 도움이 된다.
다만, 새 반려동물로 펫로스의 슬픔을 잊으려고 하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자체로 이전에 사망한 동물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조 센터장)는 것이다. 사별한 반려동물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반려동물을 데려온다고 해도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반려동물을 자칫 대체물로 여길 우려도 있다.
반려동물을 잃은 후 겪는 정신적인 어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과도할 경우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조 센터장은 "주요 우울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펫로스 증후군으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신 질환"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울이나 공포·두려움보다는 죽음이나 죽은 대상에 대한 집착과 고통이 1년 이상 나타날 경우 지속성 복합 애도 장애(Persistent Complex Bereavement Disorder)로 진단될 수도 있다.
자신이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반려동물 애도 척도(Pet Bereavement Questionnaire) 검사를 활용할 수 있다.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의 멜리사 헌트와 야니즈 패딜라 교수가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검사다. 만약 PBQ 점수가 총 37점이 넘는 경우 심각한 펫로스 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PBQ 문항은 크게 △슬픔 △분노 △죄책감과 관련돼 있다.
※ '치유 레시피' 시리즈는 전문가 자문을 거친 자가 진단 또는 회복의 방법을 디지털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제공합니다. 링크를 누르면 '한국판 반려동물 애도 척도'를 통해 직접 펫로스 증후군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링크가 열리지 않는다면, 주소(https://touchyou.hankookilbo.com/v/2024032201/)를 포털 주소창에 복사해 넣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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