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미중 노력에도 양안관계 악화 가능성
유사시 우리 지원방안 미리 마련해야
30년 된 교류·협력지침의 정비도 시급
지난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중국이 반대하고, 미국이 선호하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로 인한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압박 강화, 동아시아의 긴장 고조가 우리나라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필자는 중국 문제를 오랫동안 다루어 온 학자, 외교관들과 토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매우 유익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라이칭더의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이다. 라이 당선자는 민진당 내부에서도 독립에 대한 주장이 강한, 신조류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총통 후보로 나선 이후에는 이러한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중국 대륙에 뿌리를 둔 '중화민국'을 부정했던 그가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당선자 회의실에 배치하는 등 중국을 의식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고, 라이 당선자의 이러한 변모는 양안관계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도 이를 지지한다.
다만 대만 내 여론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80%에 달하는 점, 그리고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만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할지 예측이 어려운 점, 대만 통일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집착 등을 감안하면 양안관계 악화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둘째, 중국의 군사적 압박 가능성이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2022년 8월 이후, 중국은 그간 존중하던 양안 사이의 중간선을 무시하고, 대만에 대한 군사 훈련을 상시화한 상황이다. 대만에 대한 고립화, 회색지대 전략도 강화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대만에 대한 해양봉쇄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미중 모두 양국 간 긴장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라이 당선인이 독립에 대한 입장을 조심하고 있으며, 경제 문제가 심각한 중국으로서도 양안관계의 긴장을 높이기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강하여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중국도 자제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물론 대만 해협 유사시 우리나라가 취할 입장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만약 대만 해협에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의 안보 위기도 동시에 고조될 것이므로 우리 군이 직접 참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한미 동맹을 위해서는 병참 기지 제공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미리 연구하고,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의 경제적 압박 문제이다. 중국은 총통 선거기간 중 국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노골화하면서 양안 간에 체결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의 무력화를 이미 시도한 바 있고 많은 품목에 대한 관세 양허가 중단되었다. 이것이 반도체에까지 확대된다면 대만으로서도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이 될 것이나, 대만의 TSMC가 전 세계 파운드리 공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관련, 라이 당선인이 공급망 협력 등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 강화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는데, 반도체를 포함하여 우리나라가 대만과의 경협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 제시가 많았다. 일부 참석자들은 1998년 개정된 대만과의 교류·협력 지침이 거의 30년이 되었고, 이것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만큼, 차제에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회색하마', 또는 '검은 백조'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대만 해협의 위기가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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