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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수사의 '환호'를 이어가려던 적폐청산... 결국 검찰 힘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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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선고가 나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국정농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수사와 재판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재편했을 뿐 아니라, 법원과 검찰 조직에도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국정농단이 이 나라에 남긴 유산과 숙제는 무엇인지, 이 사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법조인 5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 관여했거나, 사건을 가까이서 살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과 각종 통계, 기록 등을 바탕으로 '2,555일(7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 7년의 총평가, 수사 과정, 재판 결과를 다룬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간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을 법무부와 검찰청에 지시했습니다."
(2017년 5월 17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문재인 정부 출범 일주일 만인 2017년 5월17일. 청와대가 서초동에 핵폭탄을 날렸다.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TV 생중계를 통해 "검찰국장이 수사팀장들에게 70만~100만 원씩의 격려금을 지급했고 중앙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 원씩 격려금을 지급했다"고 공표했다.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에 구체적인 수사 지시를 내린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어이없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하명 수사를 그렇게 비판하던 분들이 어떻게 대통령 입으로 직접 검찰에 수사를 지시해요? 만약 지금 같았으면 '검찰 공화국'이라고 난리가 났을 일이죠."
(고검장을 지낸 L 변호사)
대통령 스스로가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약속한 사람이었다. 정부 출범 직후 임명된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해선 안 된다"고 공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비위 의혹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수사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하명수사'와 '대통령의 우려 표명' 사이의 경계 위를 지나는 새로운 형태의 '수사 지시'였다.
그러나 지지율은 80%를 웃돌았던 대통령을 감히 지적하긴 어려웠다. 대통령이 사실상 지시한 '돈 봉투 만찬 사건' 감찰·수사는 시작됐다. 그렇게 '적폐청산 수사'는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검찰을 상대로 막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으로 끝난 전 정권(박근혜 정부)을 철저히 실패한 정부로 봤다. 그러니 적폐청산이라는 꼬리를 붙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대상은 없었다. 적폐청산 명목으로 정권 발주 수사가 2년 넘게 진행됐다. 대부분 다음과 같은 규칙이 존재했다. ①과거 정부 '부역자'들의 비위 의혹을 ②청와대 및 부처가 브리핑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적시한 뒤 수사 의뢰·고발하고 ③검찰은 핵심 수사력을 동원해 수사해 기소한다.
이런 공식을 통해 청산하려던 적폐의 범위는 전방위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부처별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만들도록 지시했고, 각 부처는 지난 정부가 남긴 문제들을 샅샅이 조사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등을 통해 주요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구체적인 적폐 청산 과제를 보자. 먼저 국가정보원은 서훈 원장 취임 직후 적폐청산 TF를 출범시켜 27개 의혹 사건을 지정, 전면 조사를 진행한 뒤 무더기 수사의뢰에 나섰다. 민간인 댓글부대 의혹을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정보 유출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기 수사 의혹, 보수단체 지원 의혹,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등 십여 개에 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을 조사해 수사의뢰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책임자들을 추가로 색출했고,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수사의뢰했다.
적폐청산 사정 정국이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검찰청엔 전 정권 적폐를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이 수북하게 쌓였다. 고발장에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다듬어진 전가의 보도 '직권남용죄'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했다.
돈봉투 사건으로 청산 대상이 될 뻔 했던 검찰은 이 수사로 위기를 탈출해야 했다. 그래서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에 사생결단으로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공안부 인력이 모두 동원됐고, 그것도 모자라면 전담 수사팀이나 수사단이 꾸려졌다. 판례상 무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도 검찰은 어떻게든 기소를 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과거 정부가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면,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정부는 브리핑을 통해 비위 의혹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는 식으로 '여론을 통한 압박'을 선호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법무부에서 일했던 한 법조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말은 검찰에 수사지시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장·차관이 설익은 내용을 발표하며 수사를 의뢰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검찰의 칼을 빌려 사정하는 국면이 조성된 겁니다."
검찰은 왜 이렇게 열심히 기소하려 했을까? 기소하지 않으면 검찰이 적폐로 몰리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 의원들이 '우병우 라인' 검사 명단을 카메라 앞에서 흔드는 등 검찰 조직에 대한 압박을 이어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현재 수도권에서 재직 중인 M 차장검사는 "적당히 수사하면 직무유기로 조사를 받아야 할 수 있지만, 탈탈 털어 수사하는 것은 죄가 안 된다"며 "내가 죽지 않으려면 저인망식 수사를 안 할 수가 없었던 때"라고 말했다.
당시엔 대부분 수사의뢰가 사실상 대통령의 지시로 해석됐다고 한다. 현직인 K 부장검사는 "대통령이 나서서 대놓고 거의 수사지시를 하다시피하는 데 검찰이 그 수사를 안 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고 장자연 의혹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박상기)에게 "검찰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했다.
그러다 보니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심재륜 전 고검장), '있는 건 있다, 없는 건 없다고 해라'(임채진 전 검찰총장),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한다'(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 검찰권 남용을 경계하는 검찰 내 격언은 시대착오적 옛말이 되어 버렸다. 김 전 차관 사건에선 증거가 없고 공소시효가 지나 정공법 수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본류(성접대)와 거리가 먼 별도 사기 고소장을 근거로 사업가 윤중천씨를 긴급체포하거나, 정식 입건되지 않은 김 전 차관을 '긴급출국금지'시키는 일도 있었다.
샅샅이 수사해 무엇 하나라도 잡아는 먼지털이식 수사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모두, 시대적 과제로 꼽혔던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서초동에서 '절제와 품격'이라는 표현은 사라졌다.
"모든 이슈를 다 검찰에 갖다 던졌어요. 누구 하나 자기 운명을 검찰에 맡기지 않은 이들이 없었죠. 결국 그들이 검찰을 정치집단으로 만들었고, 검찰이 정치의 향방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게 된 거죠."
(고검장을 지낸 L 변호사)
물론 적폐청산 수사의 공도 크다. 대통령, 고위 법관, 국정원장 등 수사에 성역은 없다는 확실한 인식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줘야 한다'거나 '외관으로라도 검찰에 직접 개입해선 안 된다'는 지금까지의 금기가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에서 부장검사를 지냈던 O 차장검사는 "과거엔 실제 하명수사가 있었어도 당사자들이 부인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영역으로 남아있었다면, 국정농단·적폐청산을 거치면서는 검찰과 정권이 아예 한몸이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특별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고검장 출신 법조인 P 변호사는 "수사 자체가 엉터리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적폐청산 수사는 '정치의 주도권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정치적 목적과 동기로 시작된 수사라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개혁론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시 정부가 검찰을 다뤘던 방식이나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는 수사나 사법처리 말고도 국민과 더불어서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정치적 방법도 있다"며 "하지만 당시 검찰은 이 같은 시민 사회의 몫까지 전부 장악해서 사법적으로 처리를 해버리면서 사법관의 지배, 검찰의 지배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중지를 모아 풀어가야 할 부분까지 모두 수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권 비대화'의 책임을 오롯이 전 정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검찰 스스로의 책임은 진정 없는 것일까? 검찰 안팎에는 검찰이 스스로 책임 의식을 갖고 자성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검사장 출신 Q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공무원인 검찰이 정치권이나 여론을 통한 압박에 취약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수사권 조정 국면이나 지난 정부가 윤 대통령을 압박할 때 검찰이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부당한 지시에 대해선 합법적 수준에서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고위간부 R씨도 검찰 스스로 정치 바람을 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형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사건의 본류는 적당히 하고, 여론과 정권이 주목하는 방향으로 수사가 흘러가기도 한다"며 "사건 처리 후를 생각하지 말고 사건 자체에 집중해 갈 수 있는 분위기가 검찰 안팎에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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