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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중국 ‘바둑 황제’ 커제…3년째 무관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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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량을 더 키워야 한다.”
격세지감이다. 항상 충만한 자신감으로 무장했던 기존 캐릭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에선 세월의 무상함도 감지됐다. 한때 중국 반상(盤上)을 넘어 세계 바둑계의 아이콘으로 자리했던 커제(27) 9단의 이례적인 자기 성찰이었기에 스포트라이트는 더해졌다. 지난 3일 벌어졌던 ‘제23기 중국 서남왕전’ 결승전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판팅위(28) 9단에게 패한 직후 “실력이 모자란 상황인데, 운에만 기대는 건 안 된다”며 자신을 채찍질한 커제 9단의 준우승 인터뷰 요지에서다. 그는 이어 “아홉 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지만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희망사항처럼 들렸다.
중국 바둑의 간판스타인 커제 9단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이젠 ‘그림의 떡’처럼 굳어진 세계대회 우승컵은 고사하고 자국 내 타이틀 획득조차 버거운 게 현주소다.
7일 한국기원 등에 따르면 이달 발표된 중국바둑협회의 자국 랭킹에서 커제 9단은 전월(2위)에 비해 3단계를 하락한 5위까지 밀려났다. 커제 9단의 자국 랭킹이 ‘톱3’에서 벗어나긴 2015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그의 추락은 예견됐던 수순이다. 결정적인 주요 대국에서 잇따라 패배만 맛보면서다. 실제 지난해 10월 개최됐던 ‘제2기 국수전’에선 딩하오(24) 9단에게 우승컵을 양보했고 그해 11월 펼쳐졌던 '제33기 명인전’에선 미위팅(28) 9단에게 또다시 타이틀을 상납했다. 이달 판팅위 9단에게 내준 ‘제23기 중국 서남왕전’ 우승트로피까지 더해질 경우, 세 차례의 결승전에서 모두 패배자로 내몰린 셈이다.
문제는 본질적인 경쟁력 추락세에 있다. 올해 3월 기준, 중국 내 랭킹을 살펴보면 국수전 우승컵을 내준 딩하오(4위) 9단을 제외하고 미위팅(10위) 9단, 판팅위(15위) 9단과 순위 격차나 생물학적인 연령까지 감안하면 커제 9단의 패배는 다소 의외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짜인 반상의 진검승부에서 객관적인 전력 비교는 참고 지표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커제 9단이 각종 기전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파괴력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의 결과다. 커제 9단의 우승은 지난 2021년 12월 당시 ‘CCTV 당호십국배’ 결승에서 당이페이(30) 9단에게 가져온 이후엔 전무하다.
여기에 세계 바둑계의 현재 권력인 한국의 신진서(24) 9단과 굴욕적으로 형성 중인 천적관계도 뼈아프다. 지난달 21일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졌던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커제 9단은 신 9단에게 대국 내내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면서 무릎을 꿇었다. 신 9단의 ‘농심배’ 14연승의 제물로 기록된 커제 9단은 이로써 상대전적에서 11승12패로 밀린 가운데 최근 7연패의 흑역사도 추가했다. 지난 2015~20년 사이 ‘삼성화재배’와 ‘백령배’, ‘몽백합’, ‘신아오배’ 등까지 포함해 모두 여덟 개의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컵을 수집했던 커제 9단에겐 모욕적인 이력이다.
바둑계 안팎에선 커제 9단의 이런 급락세에 대해 최전성기는 지난 데다, 최근 식당 운영을 비롯해 반상 이외의 영역에서 포착된 개인적인 사생활 등도 승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바둑계에 정통한 국내 한 중견 프로바둑 기사는 “커제 9단은 이미 중국 내부에서조차 ‘톱5’ 이외로 분류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며 “하향세인 커제 9단이 앞으로도 전성기에 들어선 라이벌 경쟁자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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