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우리 일상에서 익숙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신비로운 존재인 계단. ‘높이가 다른 두 곳을 이어주는 보행 이동 수단’이라는 기능을 가진 이 건축적 요소는 단순히 층을 오르내리는 기능을 넘어, 건축의 역사, 문화, 예술, 심리학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세 유럽의 고성 등 역사적 건축물에서 계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권력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역할을 해 왔다. 피라미드의 계단은 왕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의미하며, 지구라트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였다. 중세 유럽 성의 계단 탑은 공격자를 방어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소였으며, 왕족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동양의 전통 정원에 존재하는 우아한 계단은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계단은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형성하고 때론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로마의 명소인 스페인 계단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기는 광장과도 같이 활기찬 도시 공간이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마주한 샤요궁의 계단은 도시의 상징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베데스다의 계단은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하거나 축제를 즐기는 명소이다.
근대 이후 엘리베이터가 발명되고 건물이 높아지면서 계단은 불이 났을 때 유용하지만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엘리베이터의 편안함에 너무 몸이 익숙해졌고 디자인적으로 봐도 비상용 계단만이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면서 지루하고 힘들어 혐오시설에 가깝게 취급받고 있는 것은 건축가로서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계단은 건축 디자인에서 늘 핵심 요소였으며, 기능적인 측면과 아울러, 시각적 효과, 공간 활용, 동선, 심리적 효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현대 건축에 있어 그 존재만으로 스펙터클인 계단을 꼽으라면 나는 바티칸 박물관과 브라질리아의 외무부 청사 계단을 주저 없이 떠올린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는 유명한 두 개의 계단이 존재한다. 브라만테가 설계한 원래의 계단은 1505년에 지어졌고, 현대의 계단은 1932년에 주세페 모모에 의해 브라만테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브라만테의 계단이 특이한 것은 그것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 같이 2개의 나선계단이 서로 교차하지 않고 엇갈리게 설계된 점이다.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이 마주치지 않고 연속적인 통행이 가능하다. 주세페 모모에 의해 설계된 나중의 계단 또한 이중나선 구조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폭이 커져서 보다 역동적이며 맨 꼭대기에는 우아한 천창이 압권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나선형 갤러리와 천창이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스펙터클은 브라질리아 외무부 건물에 있는 계단이다. 브라질의 대표적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에 의해 1970년 완성된 이 건물은 곡선형 아치로 구성된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며 이 건축의 백미는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이다. 곡선형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계단은 단순히 이동 기능을 넘어, 공간을 지배하는 조각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니마이어는 당시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나선형 계단을 설계했다. 폭 2.3m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은 중앙에 아무런 지지대 없이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웅장하면서도 우아하고 부드러운 인상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기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숨 막히는 걸작이다. 계단 양옆의 안전난간이라든지 중간의 계단참과 같은 일반적인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고 최소한의 요소인 계단 발판만 공간을 지배하며 공중에 펼쳐진 매혹적인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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