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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에 밀리는 국내 제약사들... 저렴한 혁신 신약 기대 어려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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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기술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약값이 급격히 오르고 보험 부담이 커졌다. 그렇다고 개발 속도를 늦출 순 없다.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은 높이면서 기술의 가치도 충분히 인정해 산업계의 혁신이 거듭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 한국일보는 기술 혁신 속도를 못 따라가는 국내 약값 정책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심층취재했다.
글로벌 혁신 신약의 경제적 가치가 치솟는 동안 국내 신약은 '우물 안'을 탈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시장에선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 달러)를 넘어 메가 블록버스터(100억 달러) 신약이 속속 탄생하는데, 국내 신약은 기존 약을 변형하는 데 머문 '개량 신약'이 다수라는 평가다. 신약으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니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기 쉽지 않고, 혁신 신약이 개발될 가능성도 낮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혁신 신약에 버금가는 국산 제품이 많이 나와 제약산업 경쟁력이 향상된다면 국내 시장에서 약값 상승세에 제동을 걸거나 해외 제약사와의 협상력을 높일 여지가 생길 텐데,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획득한 국산 신약은 총 36개다. 그중 지난해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한 제품은 '로수젯', '카나브', '케이캡', '제미글로', '롤론티스' 정도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이상지혈증 치료제 로수젯은 지난해 매출 1,788억 원을 달성했고, 올 1월엔 가장 많이 판매되는 단일 전문의약품에 올랐다. 보령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는 지난해 매출이 1,697억 원,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은 1,582억 원, LG화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는 1,400억 원, 한미약품의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는 1,200억 원 수준이다.
그나마 유한양행의 항암신약 '렉라자'가 최근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추진 중인 렉라자는 허가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5년부터 50억 달러(약 7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유한양행은 기술료(로열티)로만 매년 7,000억 원 안팎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시장이 규모나 성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한 만큼 국산 신약은 세계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임상 효능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뛰어난 후보물질을 발굴해야 하고, 이를 개발 완료까지 이끌어 갈 R&D 투자가 강화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화학의약품과 달리 세포유전자치료제 같은 바이오의약품, 희소 항암제 등은 더 큰 규모의 R&D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블록버스터급 혁신 신약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R&D '스케일 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2022년 기준 국내 상위 10개 제약·바이오기업의 R&D 투자 비용은 총 약 2조1,500억 원에 그쳤다. 149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한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11%다. 헬스케어 컨설팅기업 아이큐비아의 '2024년 글로벌 R&D 동향' 분석에 따르면 세계 상위 15개 제약·바이오기업의 R&D 투자는 1,610억 달러(약 214조 원)로, 전년 대비 16.7% 급성장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신약개발 선점을 위한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5년 내 개발한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R&D 규모 확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5조 원급 바이오 펀드를 만들자는 계획도 갈수록 축소돼 현재 보건복지부가 조성하는 K바이오·백신 펀드는 2,500억 원대에 머물고 있다. 임상시험 3상 완료까지 수조 원이 드는 신약개발 특성상 한 건의 개발도 이어가기 어려운 규모다.
갈수록 벌어지는 R&D 격차를 줄이고, 국내 환자들에게 혁신 신약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만들기 위해선 신약개발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퀀텀점프를 위해 정부의 마중물이 필요했지만, 기대만큼 의미 있는 펀드가 만들어지지 못해 안타깝다"며 "국내 펀딩 규모에 한계가 있다만 해외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유도하는 등 R&D 규모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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