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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 10년 만에 최다 관객·한국선 공연 불매...K팝 딜레마

입력
2024.03.04 07:00
수정
2024.03.04 10: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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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 275만명...
해외 공연 본 일본인 60%가 K팝 티켓 구입
①다양해진 팬층 ②'반 자니즈' 반작용
국내선 정작 팬덤 '홀대 논란'
공연 횟수 20% 수준, 데뷔일 공연도 일본서
대형 공연장 없어 세븐틴 서울서 공연 못 해
'탈한국'? 국내 공연 기획으로 이탈 막아야"

그룹 세븐틴 공연 모습 '팔로 어게인'이란 제목으로 이달 한국에서 이틀, 일본에서 나흘 각각 공연한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세븐틴 공연 모습 '팔로 어게인'이란 제목으로 이달 한국에서 이틀, 일본에서 나흘 각각 공연한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상반기 K팝이 일본에서 10년간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0년대 초반 보아와 동방신기(일본 한류 1세대)가 K팝 인기에 불을 지핀 뒤 소녀시대와 카라(2세대) 그리고 방탄소년단, 트와이스(3세대)에 이어 뉴진스, 아이브(4세대) 등이 잇따라 주목받으며 팬층을 넓힌 결과다.

일본으로 공연이 몰리면서 그늘도 드리워졌다. 지난해 상반기 일본에선 K팝 공연이 312회나 열렸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꼴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규모를 키운 K팝이 요즘 한국 팬들에겐 원성을 사고 있다. 공연 횟수가 일본의 20% 수준으로 뚝 떨어지고 데뷔 기념일 행사마저 일본에서 열리면서 '공연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일본에서 덩치를 키운 K팝 공연 시장이 국내에선 미운털이 박히며 딜레마에 처한 모양새다.

표=박구원 기자

표=박구원 기자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K팝 한류를 이끈 1세대 그룹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K팝 한류를 이끈 1세대 그룹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엔데믹 후 日서 관객 수 253배 증가

일본 공연 업계 단체인 콘서트프로모터스협회(ACPC)가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3 상반기 공연 시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일본에서 K팝 공연을 본 관객은 275만 명이다. 지난 10년 중 최다 기록인 2014년 242만 명보다 약 12% 증가했다.

ACPC는 이 보고서에서 K팝 공연 관객 급증을 주요 이슈로 다루며 "현저한 대형 공연의 증가"를 배경으로 꼽았다. 홀과 라이브하우스 등 작은 공연장 공연은 3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 났지만,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아레나와 돔경기장 공연 횟수는 두 배 이상 많아졌다. K팝 공연 티켓 매출은 352억 엔(약 3,132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 공연 시장 전체 매출(2,389억 엔)의 14.8%에 해당한다.

그룹 트와이스는 일본에서 K팝 한류를 이끈 3세대 그룹이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트와이스는 일본에서 K팝 한류를 이끈 3세대 그룹이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 가수의 관객 동원력은 막강했다. 일본에서 해외 가수 공연을 본 총관객은 454만 명으로 K팝의 비중이 60%를 차지했다. 일본에서 외국 가수의 공연을 본 10명 중 6명이 K팝 공연을 보러 갔다는 뜻이다. 북미(100만 명)와 유럽(57만 명)의 팝스타 공연 관객 수는 K팝의 절반 수준을 밑돌았다. 올해는 일본 대중음악이 국내에 개방된 지 20년 되는 해다. J팝의 공습으로 국내 음악 시장이 잠식될 거라는 우려와 달리 20여 년이 흘러 그와 정반대로 일본에서 되레 K팝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1월부터 방송 중인 일본 후지TV 드라마 '혼활 1000개 노크'엔 K팝 '덕질'(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행위)에 빠진 일본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설가인 여주인공의 친구인 오케케(왼쪽·하시모토 마나미)가 있지의 다섯 멤버를 본뜬 굿즈(상품)를 식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 후지TV 영상 캡처

1월부터 방송 중인 일본 후지TV 드라마 '혼활 1000개 노크'엔 K팝 '덕질'(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행위)에 빠진 일본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설가인 여주인공의 친구인 오케케(왼쪽·하시모토 마나미)가 있지의 다섯 멤버를 본뜬 굿즈(상품)를 식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 후지TV 영상 캡처


공연 비자 발급 완화 특수 커질 듯

일본 공연 시장에서 K팝의 비상은 ①중년층에서 10, 20대로 팬층을 넓힌 점 ②창업자가 연습생들을 성착취한 일본 유명 연예기획사 자니즈(현 스마일업) 사태에 대한 반작용 등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지난해 일본 최대 연말 음악 쇼인 NHK '홍백가합전'에 역대 가장 많은 K팝 관련 팀(6개)이 출연했다"며 "일본 지상파가 한국에서 데뷔 두 달이 채 안 된 신인 그룹 투어스까지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일본 방송 문턱도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하반기 신인 가수 대상 공연비자 발급 기준이 완화된 것을 고려하면 일본에서 K팝 공연 특수는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덩치를 키운 일본 공연 매출을 발판 삼아 국내 K팝 기획사인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중에서 처음으로 지난해 연 매출 2조 원(연결 기준)을 돌파했다.

그룹 아이브.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아이브.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일에 일본서? 열악한 인프라 '관람 환경 악화'

하지만 한국 시장에선 K팝 소비자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 X(옛 트위터)엔 '세븐틴앙콘(앙코르콘서트) 불매'가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로 떴다. 세븐틴은 '팔로 어게인' 앙코르 공연을 이달 30, 31일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5월 18, 19일과 25, 26일엔 일본 닛산 스타디움 등에서 한다. 일본 공연일인 5월 26일은 세븐틴의 데뷔 기념일이다. 지난해 세븐틴은 일본에서 12회 공연했지만 한국에선 2회만 했다. 한국 공연 횟수가 현저히 적은 상황에서 기획사가 데뷔 기념일 공연마저 일본에서 잡자 국내 팬덤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잡음이 K팝 국내 공연 시장 전반에 걸쳐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 시장이다. 공연 관객층이 두터운 데다 대형 공연장 인프라가 좋아 대부분의 K팝 기획사들이 일본 공연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추세다. K팝 대형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 공연하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공연장을 찾는다"며 "관객 동원력, 대형 공연장 대관 문제 등을 감안하면 한국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 일본 공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룹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내 열악한 공연 인프라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K팝 공연 국내 관람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세븐틴은 서울에서 마땅한 공연장을 구하지 못해 인천에서 공연한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2026년 12월까지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서울에서 5만 명 이상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공연장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 공연뿐 아니라 관련 시상식들도 요즘 '탈한국'을 하는 분위기"라며 "기획사들은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 기획으로 국내 소비자 이탈에 장기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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