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퀴어 신학이 시작된 자리

입력
2024.03.04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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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도슨 스캔조니(Letha D. Scanzoni, 1935.10.9~ 2024.1.9)

비영리 트리니티재단이 1971~2008년 낸 기독교 풍자 격월간지 '비텐부르크의 문(Wittenburg Door)' 전 호를 통틀어 유일하게 와이드 펼침 기사(center-folder)로 수록된 70년대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펼쳐 보이며 행복해 하는 만년의 리사 스캔조니. 74년 책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들'로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물길을 열고 세대를 초월한 우정과 연대로 그 길을 넓혀 온 그는, 노년을 찬미한 로마 사상가 키케로도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을 말년까지 누렸다. eewc.com, X @danielsilliman 사진

비영리 트리니티재단이 1971~2008년 낸 기독교 풍자 격월간지 '비텐부르크의 문(Wittenburg Door)' 전 호를 통틀어 유일하게 와이드 펼침 기사(center-folder)로 수록된 70년대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펼쳐 보이며 행복해 하는 만년의 리사 스캔조니. 74년 책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들'로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물길을 열고 세대를 초월한 우정과 연대로 그 길을 넓혀 온 그는, 노년을 찬미한 로마 사상가 키케로도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을 말년까지 누렸다. eewc.com, X @danielsilliman 사진

미국의 저명 보수 신학자 잭 코트렐은 ‘페미니즘은 어떻게 교회를 침공했는가’라는 2013년 에세이에서 '기독교 페미니즘 현상’을 네 시기로 분류했다. 시작은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이른바 ‘세속 페미니즘’. 그들은 여성의 열등성과 남성(남편)에 대한 순종을 명기한 성경을 페미니즘의 적으로 여겨 성경에 비판적 주석을 단 ‘여성 성경(The Woman’s Bible, 1895)'을 출간했다. 그 공세는 대중적 반향을 얻진 못했다. 1960년대 2세대 여성운동 진영은 지모신(Magna Mater)을 숭배하던 고대 전통과 ‘어머니 지구’로 대변되는 생태주의 등으로 여성성 자체를 신격화함으로써 남성 신 중심의 종교를 대체하고자 했다. 코트렐이 ‘여신 페미니즘’이라 명명한 그 흐름 역시, 전세대와 달리 영성 자체는 긍정했지만 성경을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유물로 배격했다. 페미니즘의 대의에 부합하는 성경 교리만 선택적으로 수용한 이른바 ‘교회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그 무렵 등장했다. 그들은 성별 불문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성경과 신의 존재를 선택적으로 수긍했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전면적인 화해, 즉 성경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성경과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의 가치를 구현하려 한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 본격화했다. 그들은 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맥락과 현재의 간극을 그리스도의 본질적 가르침에 비춰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트렐은 저 글에서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가장 위협적인 현상”으로 지목하고 핵심 저작으로 리사 스캔조니 등의 1974년 저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들(All We Are Meant To Be): 여성 해방을 위한 성서적 접근’을 꼽았다. 총의 위력은 방탄복 업자가 잘 아는 법이다. 코트렐은 저 책을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초기 ‘바이블’이자 ‘획기적이고도 신기원적인 저작'이란 평을 듣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슬럿 배싱(slut bashing, 여성 비하)’이란 용어를 처음 쓴 페미니스트 작가 리오라 테넌바움(Leora Tanenbaum, 1969~)이 “주류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에 성경 해석의 대안을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던 독립 신학자 리사 스캔조니(Letha D. Scanzoni, 1935.10.9~ 2024.1.9)가 별세했다. 향년 88세.

남자가 할 수 있다면 여자라고 못할 게 없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새기던 어린 스캔조니의 다부진 입매(왼쪽)와, 그렇지 않다고 주입하던 교회에 맞서 평생을 살고 그렇게 살아낸 세상을 바라보는 노년의 미소가 대조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스캔조니 가족사진.

남자가 할 수 있다면 여자라고 못할 게 없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새기던 어린 스캔조니의 다부진 입매(왼쪽)와, 그렇지 않다고 주입하던 교회에 맞서 평생을 살고 그렇게 살아낸 세상을 바라보는 노년의 미소가 대조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스캔조니 가족사진.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로 정치-종교의 분리와 신앙의 자유를 못박아 둘 만큼 종교의 위상, 특히 보수 개신교의 영향력이 유별난 나라다. 예전보단 못하다지만 2021년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 미국 성인 43%가 개신교 신자로, 종교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코트렐이 속한 ‘교회 침략자’들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훨씬 심했고, 후기성도교회와 더불어 가장 보수적인 종파로 꼽히는 복음주의는 가장 막강한 방수층이었다. 그들에게 여성해방운동은 세상의 타락이었다. 스캔조니는 저 책에서 교회가 주입하는 여성의 열등성과 수동적 성역할은 성경을 파편적·기계적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부당할 뿐 아니라 옳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은 외부 세속주의의 침략이 아닌 교회 성체 안에서, 성경의 권위로 점화된 첫 도화선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교회가 여성운동의 무풍지대는 아니었다. 1963년 11월 복음교회 최대 정기간행물 ‘이터너티(Eternity)’에 상반된 칼럼 두 건이 나란히 실렸다.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한 성경 속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한 캐나다 목사(H.H. Kent)의 글과 “여성은 교회에서 남성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미국 신학자(Charles C. Ryrie)의 글.
오리건주의 만 28세 주부 스캔조니는 후자를 반박하는 독자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은 점점 길어졌고, 써야 할 건 더 많았다. 당시 그는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의 아내이자 아들 둘을 보살피는 주부였고, 교회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대한 책을 낸 무명 프리랜스 작가였다.

그의 글은 잡지 66년 2월호에 ‘여성의 자리, 침묵인가 봉사인가’란 제목으로 실렸다. 중세 이래 교회가 여성을 부당하게 배척한 사례들, 성경 속 여성 차별의 대표 필자처럼 호명되곤 하는 사도 바울과 고린도전서에 대한 텍스트 비평, 여성의 영적 열등성 주장의 논리적 모순에 대한 글. 여성은 교회에서 간증은 할 수 있지만 가르치거나 설교는 못한다는 지침에 대해 그는 “여성이 성경 교재를 집필하는 것은 되는데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왜 안 되는가”라고도 반문했다. 편집 과정에서 일부 표현들이 삭제·순화됐음에도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스캔조니 부인의 글이야말로 왜 교회가 여성에게 침묵하라고 말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라고 한 이도 있었다. 그는 67년 후속 글 ‘기독교인의 결혼: 가부장제인가 파트너십인가?’를 또 출판사에 보냈다. 아내의 순종을 전제한 교회 결혼관에 대한 비판. 출판사 측과의 근 1년에 걸친 수정 작업 끝에 글은 68년 5월호에 게재됐다. 앞서 출판사는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스캔조니에게 요구했다. 담당 편집자 낸시 하데스티(Nancy Hadesty)는 스캔조니에게 보낸 편지 끄트머리에 괄호를 달아 “당신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남편이 아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고 썼다. 하데스티는 “방금 편집을 마쳤는데 정말 인상적이었고, 결코 급진적이거나 도발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일개 여성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동지가 된 스캔조니와 하데스티가 칼럼을 수정 보완해 펴낸 책이, 저명 종교사학자 랜덜 발머(Randall Balmer)가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기념비적 선언문”이라 평한 ‘우리 모두가…'였다. 책의 후폭풍은 칼럼의 그것에 댈 게 아니었다.

저자-편집자로 만나 문제의 74년 저작 '우리 모두가…'를 공동 집필한 스캔조니(왼쪽)와 낸시 하데스티. 70년대(위)과 2011년의 그들. lethadawsonscanzoni.com

저자-편집자로 만나 문제의 74년 저작 '우리 모두가…'를 공동 집필한 스캔조니(왼쪽)와 낸시 하데스티. 70년대(위)과 2011년의 그들. lethadawsonscanzoni.com

리사 스캔조니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작은 주유소를 운영하던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10대 초 친구였던 목사의 딸과 어울리며 복음주의/근본주의 교회 신자가 된 그는 고교를 조기 졸업한 뒤 뉴욕 로체스터 이스트먼 음악학교(종교음악, 트롬본 전공)에 진학했다. 교회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다 성추행을 당한 뒤 시카고 무디(Moody)성서학교로 편입학, 거기서 3년 연상의 신학도 존 스캔조니를 만나 학교를 중퇴하고 56년 결혼했다. 부부는 아들 둘을 낳았다. “기독교 여성의 역할과 목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랑스러운 가정을 가꾸는 것”이라는 교회 지침에 따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내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여자애도 할 수 있다’는 유년시절 부모의 가르침 속에 성장한 모종의 투지(spunkiness)를 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었고, 농촌선교활동과 교회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도 ‘이건 내가 아는 신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품곤 했다고, 2019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뭔가 이상하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던 행복한 나이를 벗어난 그는 그 분열적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60년대 중반부터 글을 썼고, 남편이 사회학 교수로 있던 인디애나주립대(종교음악)에 진학해 72년 우등 졸업했다. 둘은 83년 이혼했다.

스캔조니는 진보종교단체 ‘복음주의사회행동(ESA)’이 74년 설립한 ‘복음주의 여성 코커스(EWC, 현 EEWC)’ 창립 멤버로 가담했고, 당시 극소수였던 회원들과 함께 주류의 핍박과 이단 시비 등을 견디며 용기와 희망을 공유했다.
그가 걸출한 페미니스트 영문학자 겸 퀴어 신학자 버지니아 몰렌코트(Virginia Mollenkott, 1932~2020)를 알게 된 건 67년 몰렌코트의 첫 책 ‘반석과 돌조각(Adamant and Stone Chips)’을 통해서였다. 신앙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경계하던 당시 교계의 반지성주의와 달리 책에는 '지식에 대한 기독교 인본주의의 접근'이란 매혹적인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는 “지식과 신앙을 분리하고 인간적인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한 현대 복음주의는 기독교와 인간성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문장에 굵은 밑줄을 그었다.
스캔조니와 몰렌코트는 73년 콜로라도의 한 보수 침례신학교가 개최한 ‘여성의 역할과 지위’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로 처음 만났고, 둘은 행사장에서 보수 신학자들의 모욕에 가까운 공격을 함께 견뎠다. 행사 후 집으로 돌아온 스캔조니는 뉴저지의 몰렌코트에게 '집회서'의 “신실한 친구는 강력한 방패”라는 구절이 인쇄된 응원 카드를 보냈다. 이틀 뒤 몰렌코트는 답장에 코페르니쿠스 기념우표를 붙여 “당신과 낸시(하데스티) 등 하느님의 창조의 경이로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겐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고 썼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우정은, “철은 철을 날카롭게 벼린다”(잠언 27:17)는 구절처럼, 서로의 일상과 책 이야기, 각자 쓴 글 등을 편지로 공유하며 숨질 때까지 이어졌다.
74년 말, 둘은 기독교 윤리를 주제로 한 책을 공동 집필하기로 하고 동성애와 낙태, 이혼, 포르노 등 7개 카테고리의 25개 주제를 선정했다. 그 결과가 78년 책 ‘동성애자도 나의 이웃인가(Is The Homosexual My Beighbor: A Positive Christian Response)’였다.

앞서 75년 8월 몰렌코트는 책 상의차 스캔조니 집을 방문해 며칠 머물렀다. 그 여름 오후, 함께 아이스크림콘을 먹으며 산책하던 중 몰렌코트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생애 처음 스캔조니에게 밝혔다. 스캔조니는 94년 책 개정판 서문에 저 일화를 소개했다.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 기억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오?’라고 했을 뿐이었다.” (공개적) 동성애자를 실제로 처음 만난 거였고, 추상적이었던 그 이슈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슈로 전환된 거였다. 그는 몰렌코트에게 자신의 반응이 그녀를 판단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라 충격에 따른 무의식적 신체 반응의 결과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몰렌코트는 “당신이 창백해진 이유가 뭐든, 나를 솔직히 드러내는 게 다른 기독교인에게 정신적 타격을 줘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나도 당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 도덕적 기준을 버리지 않고 저를 받아들이기 위해 고통스러운 동요를 겪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내 내면의 고통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둘은 다른 주제들을 밀쳐내고 동성애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고, 스캔조니는 “이 책 제목의 질문은 불필요한 것이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책 서문 첫 줄을 썼다.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우리 이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성경도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웃 될 자격이 없다고 지목해온 사실 역시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들의 책은 보수 교회가 페미니즘을 공격하며 즐겨 구사하던 대표적인 모략, 즉 ‘페미니스트는 가면을 쓴 남성 혐오 동성애자’라는 선전의 물증이 됐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통해 배우고 공감하며 나아갔고, 서로에게 기대 교회와 이웃의 비난, 친구들의 외면과 손가락질, 책 불매운동과 강연-원고 청탁 취소 사태를 견뎠다.

주류 복음주의 기독교의 성경 해석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대안으로 평가받는 74년 책(왼쪽)과 동성애(자)를 긍정한 최초의 신학적 서적으로 꼽히는 78년 책(오른쪽).

주류 복음주의 기독교의 성경 해석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대안으로 평가받는 74년 책(왼쪽)과 동성애(자)를 긍정한 최초의 신학적 서적으로 꼽히는 78년 책(오른쪽).

동성애에 대한 보수 교회의 허다한 음해들. 동성애자는 자녀를 동성애자로 키우며, 모든 게이는 여자 같고 레즈비언은 남성 혐오자이며, 그들의 사랑이란 욕정일 뿐이어서 행복한 동성애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등등에 대해 스캔조니는 “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과 신이 특히 미워했다는 여섯 가지 악덕(잠언 6:16-19)을 들이대곤 했다.

‘동성애자도…’를 출간한 하퍼원(HarperOne) 출판사 대표 클레이턴 칼슨(Clayton Carlson)은 당시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유일한 책이었던 저 책은 제목만으로도 ‘반시장적(counter-market)'이었지만 “단 한 사람의 동성애자라도 저 책으로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면 책을 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둘은 “당신들의 책이 나를 살렸다”고 적은 수많은 교회 동성애자들의 편지를 받곤 했다. 80년대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여성 코커스(EEWC)가 동성애(자) 포용 여부를 두고 내분을 겪던 와중에도 스캔조니는 단호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자매들, 레즈비언 자매와 양성애자 자매, 이성애자 자매 모두의 편에 서야 한다.(…) 너무 포용적이어서 조직 이미지가 훼손되리라는 우려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캔조니는 94년부터 2003년 말까지 EEWC가 발행한 ‘크리스천 페미니즘 투데이’의 온·오프라인 편집장으로 일했고, 평생 9권의 책(공저 포함)을 출간했다. 몰렌코트와의 우정처럼, 그는 평생 젊은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전화-편지 교류를 이어갔고, 대화 일부를 블로그로 공개했다. 스무 살 아래인 미시건주의 린다 비제(Linda Bieze), 마흔 살 아래인 오리건주의 알레나 루제리오(Alena Ruggerio)와 2003년부터 숨질 때까지 21년 간 매주 금요일 밤마다 이어온 3자 통화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다양한 사회적·신앙적 이슈를 두고 의견을 나눴고, 각각 40세 60세 80세 생일을 맞이한 해엔 함께 우정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스캔조니가 고관절과 무릎뼈 교체 수술, 백내장 수술, 유방 절제술을 받았을 때 맨 먼저 달려온 것도 그들이었다.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웃음과 미소를 지닌 사람”이라 여겼다는 스캔조니는 그 특유의 미소로 “박사 석사를 화장실 청소부로 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고교시절 트롬본을 들고 교내 빅밴드 리더로 활약했던 스캔조니는 평생 음악을 사랑했고, 말년의 소크라테스가 탄현악기 리라(lyra)를 익힌 것처럼 덜시머(dulcimer)를 배워 친구들에게 연주해주곤 했다.

성경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본 것처럼, 그는 여성문제뿐 아니라 인종차별과 의료 윤리, 환경, 기후 변화 등 세상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 정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 복음주의 페미니즘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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