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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넘어선 기적" 이어지지만... 비싼 신약들만 개발되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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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기술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약값이 급격히 오르고 보험 부담이 커졌다. 그렇다고 개발 속도를 늦출 순 없다.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은 높이면서 기술의 가치도 충분히 인정해 산업계의 혁신이 거듭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 한국일보는 기술 혁신 속도를 못 따라가는 국내 약값 정책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심층취재했다.
2020년 초겨울에 태어난 네 살 유진이(가명)는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다른 아이와 좀 다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불안을 안고 찾아간 큰 병원에서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앉지도 서지도, 심지어 몸을 가누지도 못하다가 2년쯤 지나 세상을 떠날 확률이 높다는 병이었다.
그런데 '졸겐스마'를 만났다. 2019년 미국에서 허가된 졸겐스마는 한 번 주사로 척수성 근위축증을 낫게 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다. 당시 한국에선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난치병 환자에게 마지막 치료 기회를 주는 동정적 사용을 승인받아 유진이는 졸겐스마를 맞은 국내 첫 환자가 됐다. 4년이 지난 지금, 유진이는 스스로 몸을 가누며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유진이 어머니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경계해야 했었는데, 이건 '기적을 넘어선 기적'"이라고 했다.
졸겐스마와 같은 혁신 신약이 과거라면 환자가 살지 못했거나 고치지 못했을 병을 치료해내며 세계 의약품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다만 혁신을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신약에 각종 신기술이 접목되면서 연구개발(R&D)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약값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겐스마만 해도 미국에서는 약 29억6,000만 원, 한국에선 약 20억 원에 달한다. '퍼스트 인 클래스'(세계 최초의 약) 신약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글로벌 빅파마들은 앞다퉈 초고가 신약 개발로 R&D 중심추를 옮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의약품 중 가장 비싼 약 상위 7위까지가 전부 희소질환 치료제다. 1위는 2022년 승인된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로, 한 번 맞는 데 무려 350만 달러(46억 원)가 책정됐다. B형 혈우병은 10만 명당 3~4명에서 나타난다. 2위는 뒤센 근이영양증을 앓는 4~5세 어린이에게 조건부로 승인된 '엘리비디스'다. 이 약은 320만 달러(42억 원)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치료하는 '리프제니아'가 300만 달러(40억 원), 뇌 부신백질 위축증 치료제 '스카이소나'가 300만 달러(40억 원), 베타탈라스혈증 치료제 '진테글로'가 280만 달러(37억 원)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이 졸겐스마다. 모두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겨냥한,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약이다.
글로벌 제약산업 분석업체 '이벨류에이트 파마'에 따르면 지난해 1,730억 달러(약 232조 원) 규모였던 세계 희소질환 의약품 시장은 2028년 3,000억 달러(400조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체 처방 의약품 매출액 중 희소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14.8%에서 18.4%로 확대될 거란 예상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렇게 희소질환 약에 집중하는 이유는 뒤따르는 경쟁사 없이 장기간 시장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또 각국 정부가 희소질환 치료제에 대해선 우호적으로 약값 협상을 하고, 개발비 직접 또는 세제 지원, 신속 심사 제도 등의 혜택을 주는 영향도 크다. 미국은 희소의약품 R&D에 최대 50%의 세제 혜택을 준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2020년부터 4년간 국내 건강보험에 등재된 신약 중 일반 경제성 평가 트랙을 통과한 건 6개에 그친 데 비해 희소질환 치료용이라 경제성 평가가 면제된 건 19개로 3배나 많았다. 제약사 입장에선 희소의약품이 임상시험만 넘기면 높은 약값으로 일반 의약품보다 더 장기간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희소의약품의 최종 임상 성공률(17%)이 비(非)희소의약품(5.9%)보다 3배나 높다는 통계도 있다.
빅파마들은 이 같은 고수익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에 없던 신기술을 신약에 적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졸겐스마는 세계 최초로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 전달 기술을 활용해 개발된 유전자 치료제다. 약값이 29억 원에 달하는 '카스게비'에는 환자의 유전자를 편집·교정·교체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이 세계 처음으로 적용됐다. 세포치료제 '킴리아'도 효과가 크지만 한동안 초고가 신약 상위를 유지했을 정도로 비싸다. 환자 개인의 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맞춤 치료법이라 양산이 어려운 탓이다.
세계 최초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 '플루빅토'는, 특정 단백질에 결합하면서 암세포를 인지하는 물질(리간드)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인 형태다. 방사선으로 정밀하게 암세포를 파괴하는 원리인데, 방사성 동위원소를 장기간 공급받으려면 양성자가속기 같은 원자력 장비가 필수다. 이런 대규모 기술 인프라 역시 신약의 혁신성을 높이면서 가격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단백질을 더 균일하게 합성할 수 있는 우주환경 등 미래형 첨단 인프라까지 앞으로 신약에 적용된다면 개발비는 그야말로 천문학인 규모가 될 거란 관측이다. MSD, 아스트라제네카, BMS, 보령 등이 이미 우주기술 융합에 뛰어들었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가 의약품 출시가 늘면서 각국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진 만큼 세계 시장에서 적정 약가 책정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비싼 신약만 개발되는 딜레마를 해소하고 신약 가격 상승에 제동을 걸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은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약가 인하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장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우선 약값을 내릴 대상 10개 제품을 발표했는데, 글로벌 빅파마들은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약효는 비슷하면서 값은 더 싼 바이오시밀러의 빠른 진입도 미국은 적극 유도하고 있다.
빅파마 스스로도 윤리적 문제에 봉착했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소수만을 위한 초고가 신약 개발은 박수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온다"며 "어렵지만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과 성장 가능한 수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열심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첨단 기술을 대체할 또 다른 기술 혁신으로 연구개발 비용을 낮추려는 시도에 제약사들이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는 "오가노이드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임상시험 등 신약개발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약값의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항생제 내성, 넥스트 팬데믹과 같은 다수를 위한 헬스케어에는 공공자금과 행정력을 충분히 투입하되, 수익이 되는 신약만 좇는 제약사도 기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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