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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짜장면보다 싸진 스타벅스 커피...이래도 '된장녀'라고 모독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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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한국일보의 이 연재를 하며 여태껏 스타벅스의 역사를 다루지 않았다니. 필자인 내가 더 놀랐다. 스타벅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및 카페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1999년에 진출해 2023년 말 기준으로 1,893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매장 수이고, 3위인 일본과 고작 8개 차이이다. 그런 스타벅스의 역사이건만, 너무 당연해서 이미 다뤘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1년 미국에서 설립됐으니 올해 9월이면 53주년을 맞는다. 물론 50여 년은 만만치 않은 세월이지만, 인간이 커피를 마셔 온 세월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 없다. 당장 에스프레소만 하더라도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 비해 스타벅스가 세계의 커피와 카페 문화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스타벅스는 1971년 제리 볼드윈, 고든 보커, 제브 시글 세 사람이 창립했다. 시애틀의 관광 명소 파이크 플레이스 시장에 커피와 더불어 각종 기념품을 살 수 있는 1호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창립자 세 사람 가운데 볼드윈과 보커는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만났으며, 시글은 스타벅스의 첫 번째 사원이었다.
잘 알려졌듯 '스타벅스'라는 상호는 허먼 멜빌의 고전 소설 '모비 딕'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의 이름 끝에 에스(s)를 붙인 것이었다. 초창기의 스타벅스는 알프레드 피트의 영향을 받아 지금과 다른 사업 모델을 추구했다. 네덜란드 이민자인 피트는 1950년대부터 고품질의 아라비카 원두를 미국에 수입하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피츠커피앤드티'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고 미국 서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키워 냈다.
3인방은 설립 초창기 피트로부터 생두를 매입하고 네덜란드에서 중고 원두 로스터를 구했다. 그리고 볼드윈과 보커가 앞장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원두의 블렌딩과 맛 등을 찾아 나갔다. 이런 시도 끝에 스타벅스는 1980년대 초반 시애틀에서 최고의 원두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시글은 10년 동안 부사장과 디렉터로 일한 뒤 스타벅스를 떠났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카페 위주의 스타벅스라는 이미지는 하워드 슐츠(1953~ )의 작품이다. 슐츠는 원래 스타벅스의 드립커피 기기 거래처인 스위스 기업 하마르플라스트의 영업 사원이었다. 그는 스타벅스로부터 들어오는 주문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매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큰 감명을 받아 스타벅스에서 커리어를 쌓겠다고 결심한 뒤 1982년 영업 총괄로 영입됐다.
1983년 슐츠는 스타벅스에 혁신의 기회를 조성했다. 계기는 그해의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이었다. 국제 가정용품 박람회를 참관하려 밀라노를 찾은 슐츠는 도시 전역에 1,500군데나 있는 카페와 관련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시애틀 지역 브랜드가 아닌,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뻗어 나가는 카페 스타벅스의 청사진을 그렸다.
볼드윈과 보커는 슐츠의 비전을 반기지 않았다. 그들은 스타벅스를 원두와 커피 관련 장비 등을 파는 브랜드로 규정하고 있었고 이를 고수하고 싶어 했다.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 등과 더불어 분위기를 파는 카페로 변모시키기 싫었던 것이다. 슐츠는 자신의 비전이 수용되지 않자 1985년 스타벅스를 떠났다.
슐츠는 자신의 비전대로 '일 지오르날레'라는 프랜차이즈를 개업하고 빠르게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1987년 볼드윈과 보커가 스타벅스를 팔기로 하자 바로 투자자를 모아 사들였다. 드디어 슐츠의 소유가 된 스타벅스는 그의 비전을 바탕으로 변모해 나갔다. 커피는 물론 원두와 장비 등까지 한꺼번에 취급하는 카페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슐츠의 인도 아래 빠르게 세를 불렸다. 4년 만에 20군데에서 100군데로 매장의 수가 늘어났다. 빠른 성장세는 1992년의 기업 공개를 계기로 폭발했고(매장 수 165개), 1996년에는 처음으로 북미 외의 지역인 일본과 싱가포르에 매장을 열고 세계 진출의 물꼬를 텄다(매장 수 1,015개). 그리고 1990년대 말까지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10여 개 나라, 2,500군데의 매장으로 세를 불렸다.
슐츠는 2000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 그가 의장직만 유지한 가운데 스타벅스는 빠른 확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었다. 전 세계 1만5,000곳의 매장을 거느리게 됐지만 품질과 브랜드 가치가 총체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 대침체와 맞물려 지나친 확장으로 인한 자기잠식, 맥도널드를 비롯한 다른 브랜드의 커피 음료 확장 등의 결과였다.
결국 2008년 슐츠는 다시 CEO로 복귀해 변화를 주도했다. 900군데의 매장을 정리하는 한편 자동 커피추출기 브랜드 클로버를 매입하고 스타벅스식 인스턴트 커피 비아(VIA)를 출시했다. 2012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라불랑제 베이커리를 매입해 제과 제빵 분야의 개선도 시도했다. 슐츠가 매장 전반의 메뉴 변화까지 굽어본 결과 스타벅스는 2012년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회복했다.
슐츠는 2017년까지 CEO로 일하다가 케빈 존슨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며, 2018년에는 의장직도 마이런 울먼이 맡으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리저브' 콘셉트의 매장이 세계 최대 규모로 2019년 시카고에 문을 열었으며, 2021년에는 3만2,000곳까지 매장의 수를 늘렸다. 2018년엔 창립 47년 만에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 입성했다.
이탈리아가 본고장인 음료를, 더 나아가 식문화를 이탈리아에 가져다 파는 시도는 보통 일이 아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미국 식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멀쩡한 문물을 가져다가 망쳐 놓는다고 본다. 그래서 많은 미국의 식음료 기업이 실패했다. 젤라토의 벽을 뚫지 못한 아이스크림 벤앤드제리와 하겐다즈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양질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카페 문화에서 사교적 측면을 중시한다. 스타벅스는 그런 전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현대 또한 아우른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접근했다. 그리고 2023년 3/4분기 기준으로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전역에 31군데의 매장을 열었다. 커다란 햄버거인 빅맥, 양이 많은 커피인 벤티 사이즈로 대표되는, 유럽인들의 눈에는 섬세하지 못한 미국 문화의 선입견을 깨기 위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한국의 스타벅스는 이제 25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들어선 1호점은 2019년 20주년을 맞아 리저브 매장으로 새 단장해 다시 문을 열었다. 매장이 2018년 1,262개로 늘어나면서 커피 브랜드 최초로 연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매장에서 커피와 음료를 제조하는 '파트너' 또한 1만4,846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성장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았다. 스타벅스의 2022년 매출액은 2조5,839억 원으로, 2위 투썸플레이스의 4,282억 원의 다섯 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다. 다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나 감소한 1,225억 원에 그쳤다. 원두와 우유 가격 상승, 브랜드 사이의 출혈 경쟁 외에 2022년 '서머캐리백 발암 물질' 사태(스타벅스 굿즈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의 여파 때문이었다.
1999년 한국 진출 당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2,500원으로 짜장면 한 그릇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그 탓에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여성이 여성혐오 용어인 '된장녀'로 불리는가 하면 과소비의 상징이라는 낙인에 시달리기도 했다. 2023년 기준 짜장면 한 그릇은 7,000원 수준으로 오른 가운데 스타벅스의 커피는 4,0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 그런 낙인도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커피보다 시간 단위 초단기 공간 임대업처럼 기능하는 스타벅스이지만 한국 커피와 카페 문화에 기여한 것은 확실하다. 스타벅스의 본격적인 진출로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고급 커피를 넘어 사치재라고 여겨졌던 원두커피 문화가 대중화됐다. 그와 더불어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도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어둠침침해 건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던 카페라는 공간의 시대를 청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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