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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상하이 대첩’ 완성한 ‘신공지능’…신진서 9단 “아직도 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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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만인의 저승사자’, ‘신공지능’,
범상치 않았다. 비인간계의 캐릭터였던 데다, 연상된 이미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진검승부만으로 점철된 반상(盤上)의 승부사에게 주어진 별명이라면 시선은 달라진다. ‘신공지능’은 인공지능(AI)급 실력이란 의미로 붙여졌다. 최근 막을 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한국팀에게 막판 드라마틱한 6연승에 힘입어 대역전 우승을 선물한 신진서(24) 9단 얘기다. 신 9단은 특히 지난 2005년 열렸던 ‘제6회 농심배’에서 한국팀 수호신으로 등장, 일본(2명)과 중국(3명) 선수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우승컵까지 가져왔던 살아있는 전설 이창호(49) 9단의 ‘상하이 대첩’ 재현에 성공하면서 ‘밀레니엄(2000년대 출생)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각인된 ‘농심배’는 현재 바둑계의 유일한 국가대항전이다. 각 나라에서 5명의 선수가 팀을 구성, 연승전 방식으로 최종 우승까지 정한다. 그 만큼 험난하다. 세계 1인자로 올라선 신 9단 역시 농심배 우승만큼이나 쉽지 않은 여정을 걸어왔다. ‘신 상하이 대첩’ 신화 작성과 더불어 ‘국민영웅’으로 돌아온 신 9단의 반상 인생을 복기해봤다.
부산 태생의 신 9단은 떡잎부터 달랐다. 전국 대회 우승을 위해선 전문도장 수련이 필수였던 바둑계의 불문율부터 거부했다. 사실상 인터넷 독학만을 통해 유치원생 신분으로 부산시장배 저학년부에서 우승한 데 이어 초등학교 4학년(2010년) 당시엔 5,6학년 선배들까지 제치고 4관왕(정현산배, 대한생명배 어린이국수전, 조남철국수배, 전국체전)에 오른 것. 바둑교실을 운영하면서 5살배기였던 신 9단에게 취미로 바둑을 가르쳤던 부친(아마 5단)이 “프로기사로서의 삶은 여러가지로 고달프다”며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고집을 꺾어야만 했던 배경이다.
승부욕도 지독했다. 10여년 전, 충암바둑도장에서 프로 입문 직전의 신 9단을 지도했던 한종진(45) 9단의 기억은 이를 가늠케했다. 한 9단은 “연구생 초짜인 초등학교 6학년이 10년 이상 경력의 선배들과 대국에서 패하면 화장실에서 1시간 넘게 울기만 했다”며 “매번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느라고 고생 좀 했다”고 떠올렸다. 한 9단은 이어 “신 9단 부모님 전화도 많이 받았다”며 “인터넷 대국에서 패하면 밤을 세워서라도 이길 때까지 둬야 직성이 풀렸던 신 9단의 성격 탓에 지각을 자주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내공을 축적해왔던 신 9단의 잠재력은 지난 2014년부터 터졌다. 그 해 ‘하찬석국수배 영재바둑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이듬해엔 종합기전인 ‘렛츠런파크배’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인 자신의 존재감도 알렸다. 이후, 각종 국내 기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고 일찌감치 K바둑의 ‘미래 권력’으로 주목됐다.
승승장구했던 신 9단에겐 아픔도 찾아왔다. 지난 2016년 11월,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1회 LG배 기왕전’ 4강전에서 당시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중국의 당이페이(30) 9단에게 사실상 손아귀에 쥐었던 대국을 경솔한 덜컥수로 내줬고 팬들의 원성은 쏟아졌다.
최대 위기 또한 7년 전, 수순과 유사한 패턴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6월, 역시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1회 취저우 란커배’ 결승전 3번기(3판2선승제)에서 첫 판은 이겼지만 2,3국을 연거푸 어설픈 반상 운영으로 중국 구쯔하오(26) 9단에게 또 다시 충격적인 대역전패를 허용한 것. 이 대국 직후, 신 9단조차 “내 바둑이 이젠 끝났다고 생각됐을 만큼, 절망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세계 메이저 기전 결승에서 외국 선수에게 처음으로 대역전패를 당했던 신 9단의 내상은 그 만큼 상당했다.
반상에서 슬럼프 극복은 승리 이외엔 백약이 무효라고 했던가. 란커배 패배 이후, 절치부심했던 신 9단은 2개월 이후 또 다른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9회 응씨배’ 결승전 3번기에서 중국의 동갑내기인 셰커 9단에게 2연승으로, 우승트로피를 가져오면서 극적인 부진 탈출에 성공했다. 만약, 응씨배 결승에서 패했다면 신 9단은 자칫 나락으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농후했던 상황이었다. 신 9단 또한 “란커배 결승 패배 이후, 바둑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게 사실이었다”며 “응씨배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면 바둑 인생이 어디로 흘러갔을 지, 제 자신조차 장담할 순 없었다”고 털어놨다. 신 9단의 응씨배 우승이 올해 1월 열렸던 ‘제28회 LG배 기왕전’ 타이틀과 더불어 ‘제25회 농심배’ 우승까지 견인했던 셈이다.
바둑계 안팎에선 세계 메이저 개인 기전 누적 타이틀 6개와 이번 농심배 신화까지 적립한 신 9단은 이미 바둑 인생의 완생(完生)에 접어들었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신 9단의 생각은 달랐다. “많이 부족합니다. 항상 성장하고 한계를 뛰어 넘는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여전히 미생이니까요.” 완생을 향한 ‘신공지능’의 반상 행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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