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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아이들이 가려 했던 제주를 엄마아빠가 대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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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아이들이 오고 싶어 했던 제주에 부모가 대신 왔네요.
25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앞에 선 김종기씨는 감정을 추스르며 마이크를 잡았다. 바람이 불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지만 100여 명의 인파가 김씨 주변을 둘러쌌다. 유족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단'이 이곳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씨는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가려고 세월호에 탔다가 구조되지 못한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 김수진 양의 아버지다. 그는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올해 유족들은 먼저 떠난 아이들을 추모하는 행진을 기획했다. 이날 제주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왔던 전남 진도항(옛 팽목항),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돼 있는 목포를 거쳐 광주, 대구, 부산부터 강원도 강릉·속초까지 가는 일정이다. 대구에서는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을 만나는 등 다른 참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할 계획이다. 행진단은 전국을 돈 뒤 3월 16일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 공간에 모인다.
유족들이 10주기에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안녕하십니까'였다. 지난 10년간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인 동시에 지금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2학년 9반 진윤희 엄마'인 김순길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라는 죄책감 탓에 딸을 떠나보낸 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괴로웠다"며 "참사 피해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 만큼, 내 자식은 돌아올 수 없지만 우리와 같은 일을 겪는 부모가 없길 바라며 구호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과 동행한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건 아침저녁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보살피겠다는 약속"이라고 했다. 유족 등 행진단원들은 걷다가 만난 제주 시민들을 향해 "지난 10년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들은 도보 행진을 마치고 진도항으로 떠나는 쾌속정에 올라탔다.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로 배를 타는 일이 힘들 법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김 사무처장은 "예전에는 배는커녕, 바다를 보는 것도 힘들어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에서 열리는 선상추모식도 불참했다"며 "하지만 4년 전부터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배를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족 등 시민행진단은 26일 진도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진 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22년에는 이태원 참사가, 지난해에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했다"며 "국가의 잘못으로 국민이 목숨을 잃는 잘못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행진단은 특히 "3년 6개월간의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조사에도 참사 당일의 진실은 여전히 밝히지 못했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며 "참사 이전이나 현재나 달라진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기록물과 일부만 공개된 국정원 사찰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한 추가 재조사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진에는 유족 21명과 시민 80여 명이 참여해 12㎞를 걸었다. 유족들과 함께 행진한 설주일(57·전남 해남군)씨는 "유족들이 각 지역 주민들의 환대 속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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