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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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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에서 오만만큼 치명적인 독은 없지 싶다. 정치적 신념에 기초한 일방주의나 권력남용은 오만으로 비치고, 결국엔 국민의 눈 밖에 나게 마련이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 과도한 승리 확신과 낙관은 필히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김칫국에 취해 있다가 투표함을 까고 보면 예상 밖의 결과에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오만에 대한 유권자의 혹독한 심판인 셈이다.
□드라마틱했던 2016년 20대 총선이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정부시절 야권 분열로 여당인 새누리당은 선거 한참 전부터 승리 분위기에 젖었다. 김무성 대표는 '180석 확보로 국회선진화법을 돌파하자'는 구호를 내세울 만큼 여당 우위 구도가 확실했다. 공천 과정에 ‘진박 감별’이라는 희한한 말이 나돌았고 친박, 비박계 갈등 와중에 김 대표의 ‘옥새 들고 나르샤’ 파동이 빚어졌다. 선거당일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까지 여당 118~136석,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107~128석으로 예측됐지만, 여당은 최소에 가까운 122석, 야당은 123석을 얻으면서 새누리당은 과반은 물론 원내 1당도 놓쳤다. 오만이 부른 선거 참패다.
□22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 난기류는 유사한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지난해 말부터 정동영, 조국을 비롯한 야권인사들이 200석을 운운했고, 이해찬 상임고문도 단독 과반이냐, 180석을 먹느냐는 게 관건이라는 식의 낙관론을 폈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따른 자신감이다. 막상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은 친명 패권이 부른 탈당과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면서 내부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비명 횡사’라는 조어는 민주당 공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당 원로들까지 내홍에 참전한 거대 야당의 위기는 수습이 쉽지 않아 보인다.
□대개 총선에선 정권심판론 분위기가 잡히기 마련이지만, 지난 4년 동안 입법 권력을 휘둘러온 야당심판론이 적지 않은 선거 판세다. 여론조사에선 공천 잡음이 덜한 여당 우세를 점치는 결과가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정치적 겸손’을 보여줄 방법을 민주당 지도부가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권의 오만이냐, 야당의 오만이냐를 가늠하는 유권자의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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