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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기념’하겠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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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0년 전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당시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국장이 전남 진도 팽목항 대합실 건물 1층에 마련된 가족지원 상황실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에게 기념촬영을 제안했다. 세월호 사망자 명단이 빼곡하게 적힌 상황판이 배경이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이게 기념할 일이냐”는 실종자 가족의 울부짖음에 사진은 찍지 못했다. 해당 국장은 3시간 만에 전격 해임됐다.
□공직자들의 이런 부적절한 기념촬영 논란은 사회적 재난 때마다 있었다. 이듬해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세월호 선체 수중 촬영을 마친 민간 잠수부들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 물의를 빚었다. 김부겸 전 총리는 행안부 장관 시절이던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사태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곤욕을 치렀고, 지난해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엔 자원봉사를 나갔던 공기업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단체 사진을 찍은 것이 알려져 뭇매를 맞았다.
□재난 현장만이 아니다. 슬픔을 나누기 위한 공간에서 슬픔 대신 기쁨을 나누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4년 광주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영결식에선 조문객으로 참석했던 김태호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2017년 위안부 할머니 빈소에선 송영길∙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머리를 숙여야 했다. 김남국 의원(무소속)은 2020년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지나던 시민에게 동반자들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해외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상당수 국내 일간지들은 21일자 신문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셀카’로 단체 기념촬영을 하는 외신 사진을 실었다. 잇단 폭격으로 건물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주저앉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배경으로 군인들은 휴대폰 카메라를 응시하며 너무 해맑게 웃고 있다. 한 군인이 허리에 손을 얹고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하는 사진도 있다. 흡사 관광지에 놀러 온 여행객이다. 이들이 현역 군인인지 훈련병인지는 중요치 않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이렇게 끔찍한 현장조차도 누군가에겐 그저 ‘기념’의 대상일 뿐이라는 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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