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트위치를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입력
2024.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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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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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종종 방문하던 사이트 중에 '저스틴.(닷)tv'가 있었다. 지금의 아프리카TV가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 후반에 해외에도 그와 비슷한 성격의 온라인 방송 사이트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스타크래프트 2'처럼 당시 한국 내에선 비교적 인기가 적었던 게임의 플레이를 찾아볼 수 있는 '탈출구' 중 하나였다. 트위치가 그 저스틴.tv의 사실상 후신이란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이달 27일을 끝으로 트위치가 한국에서의 서비스를 종료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방송인은 수익 창출을 할 수 없고 한국 시청자는 전 세계의 어떤 방송인에게도 트위치가 제공하는 '구독' 혹은 '비트' 후원을 할 수 없다.

댄 클랜시 대표가 트위치의 한국 서비스 종료를 밝히면서 "다른 지역의 10배가 넘는 통신사들의 과도한 망 사용료"를 문제 삼았기 때문에 여파가 클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네이버가 신규 온라인 생방송 서비스 '치지직'을 내놨고, 그 이전부터 트위치와 경쟁하던 아프리카TV는 게임방송 친화적인 개편을 진행 중이었다. 초점은 어느새 "누가 어디로 가느냐"로 옮겨가 버렸다. 대체로 게임방송을 하는 방송인들은 치지직으로, 일상 이벤트 중심 방송인 '버추얼 유튜버'들은 아프리카TV로 향했다. 트위치도 누적된 구독 기록을 한국의 두 플랫폼에 넘기기로 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

그동안 트위치와 협업하던 다른 기업조차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특정 게임방송을 일정 시간 시청하면 게임 아이템을 주는 '드롭스' 이벤트는 어차피 해외 게이머들을 겨냥해 진행한 이벤트였다. 삼성전자의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나 갤럭시 시리즈의 홍보도 트위치에선 대개 영어권을 겨냥한 방송만 진행해 왔다.

트위치 자체가 한국 사업에 의욕을 잃었다는 징후는 2022년 말 '다시 보기'와 '클립' 기능 제공을 중단했을 때부터 나타났다. 어쩌면 "돈이 안 되는" 사업 전체에 관심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트위치는 지난해 400여 명을, 올해 초 다시 500여 명을 해고했는데 비영어권 인력을 다수 줄였다.

한 스페인어권 방송인이 "트위치는 우선순위를 모른다. 트위치콘부터 없애라"고 말했다 한다. 트위치콘은 방송인의 네트워킹을 겸한 대규모 전시회로 미국 서부와 유럽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다. 아마도 여기에 다른 언어권 방송인의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트위치의 한국 철수도 사업적으로 타당한 선택일 수 있다. 트위치의 영어권 방송인들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협업 콘텐츠를 낸다. 트위치를 매력적이게 하는 것은 방송 서비스보다 방송인과 시청자가 만들어 가는 '공동체' 자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위치를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파이널 판타지 14'처럼 한국보다 영어권에서 훨씬 많이 즐기는 게임방송을 보기 때문이고, 그들의 방송은 여전히 트위치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쓰며 해외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하는 소수의 한국 방송인들도 어떻게든 트위치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TV가 '숲'으로 리브랜딩을 선언하며 해외 진출을 약속했고, 많은 방송인들이 치지직으로 넘어갔지만, 트위치여야만 하는 방송도 시청자도 있다. 저스틴.tv를 보던 시절에 그랬듯이.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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