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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후두염 걸려 사라졌던 '송곳 고음' 김범수, '이것' 버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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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활동 25년을 돌아보는데, (음악으로) 무릎 꿇었던 순간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김범수(45)는 "내 어제는 고민 끝에"로 시작되는 신곡 '여행'의 노랫말을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범수)·나(얼)·박(효신)·이(수)', 가창력 뛰어나기로 소문난 4대 남성 보컬로 손꼽히는 그가 노래로 무릎 꿇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좌절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무릎 꿇고" 사라진 김범수
22일 새 앨범 '여행' 발매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의 카페에서 만난 김범수가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2019년 그는 한 곡을 부르고 공연을 중단했다. '오직 너만' 후렴에서 그의 목소리는 쩍 갈라졌다. 공연을 취소한 그는 나가는 관객의 손을 한 명씩 잡은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푯값을 모두 돌려줬다. 1999년 1집 '어 프로미스'로 데뷔한 뒤 노래를 부르다 공연을 취소하기는 처음이었다. 공연 당일 급성후두염 진단을 받았다. 김범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사라지고 싶더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옛일을 들려줬다.
이 일은 김범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늘 놀이터처럼 오르던 무대는 처형대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온전히 돌아왔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무대에 올라가면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쿵, 쾅' 하고 박혔다. "공연 취소 충격으로 생긴 무대 공포증"이었다. 1년 동안 활동을 접고 제주로 갔다.
전매특허 '송곳 고음' 버린 이유
성장통을 치르고 일군 앨범이 '여행'이다. 2014년 낸 8집 '힘' 이후 10년 만에 낸 9집엔 '그대의 세계' '걸어갈게' '혼잣말' 등 11곡이 담겼다. '보고 싶다' '끝사랑' 등 과거 히트곡들과 새 앨범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타이틀곡 '여행'에서 그는 속삭이듯 노래하고 후렴도 허밍으로 채운다. 격정 없이 몰입을 이끈다. 공연 취소와 제주살이를 거치며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여파다.
"제가 미니멀한 음악을 찾아 듣고 있더라고요. '이게 내 지금 마음이구나' 싶었죠. 그래서 제가 즐겨 듣던 음악을 만든 최유리, 선우정아씨 등을 모셔 앨범 작업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높은 음을 낼까, 애드리브를 수려하게 꺾어 마무리할까' 같은 생각으로 기계체조 선수처럼 노래하려는 관성을 모두 버리고요. 가사를 잘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밴드 롤러코스터 출신 기타리스트 이상순은 '너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을, 선우정아는 '각인'을 작곡해 김범수의 도전을 도왔다.
김범수는 이번 앨범에 '풀꽃 시인' 나태주의 '너를 두고'를 노랫말로 썼다. 동명 곡을 낸 그는 "제주살이할 때 나태주 시인의 시를 즐겨 읽었다"며 "들꽃 하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이야기가 불안하고 우울했던 내게 힘이 됐고 그런 이야기가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아 곡으로 쓰게 됐다"고 작업 계기를 들려줬다.
김범수의 새로운 음악 여행에 배우 현빈과 유연석도 팔을 걷어붙였다. '여행'의 뮤직비디오엔 유연석이, '그대의 세계'엔 현빈이 출연했다. 현빈과 김범수의 인연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빈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가든'(2010)에 쓰여 인기를 얻은 '나타나'를 부른 게 김범수다. 그는 "현빈·손예진 부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뒤 이 곡 작업할 때 계속 현빈이 떠올랐다"며 "뮤직비디오 출연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여 줬다"고 말했다.
박치로 야단 맞던 '반쪽 가수'의 중꺾마
김범수는 올해로 데뷔 25년을 맞았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뒤 어려서 서울의 반지하 집에서 살던 그는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다 가수의 꿈을 키웠다. 연습생 시절 그에게 노래를 지도했던 가수 박선주에 따르면, 당시 김범수는 '박치'였다. 야단 맞으면서 노래 실력을 갈고 닦았지만 데뷔 후 4, 5년을 '얼굴 없는 가수'로 살았다. 1집을 내고 좋은 기회가 찾아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그의 노래가 점점 음악 차트에서 밀려나자 음반기획사가 그의 얼굴 노출을 말렸다. '지나간다'(2010) 뮤직비디오에 이 노래를 부른 김범수 대신 작곡가 박진영의 얼굴만 계속 나오는 배경이다. '반쪽 가수'로 살았던 그는 꺾이지 않고 버텨 발라드 시장을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김나박이'란 별명이 무서운 얘기 듣는 것처럼 두려웠어요. 이번에 마음고생하고 그 짐을 내려놨죠. '여행'이란 곡이 '그래 언젠가는 여행을 떠나봐야지'라며 끝나요.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 그냥 앞으로 가려고요. 제가 노래를 좋아했던 그 순수했던 모습들을 찾아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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