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배아도 태아" 미국 법원 첫 판결… 시험관 시술 어쩌나

입력
2024.02.20 21:58
수정
2024.02.2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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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주 대법원 "배아 폐기하면 법적 책임"
시험관아기 시술 처벌 우려… "전례 없는 판결"
11월 대선 국면, 임신중지 이슈 뜨거워질 전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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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험관 시술을 위해 만들어진 냉동 배아(수정란)도 태아로 봐야 한다는 주(州) 법원 판결이 나왔다. 냉동 배아를 태아로 인정한 첫 판결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만 연간 수십만 명에 이르는 난임 부부가 체외 인공수정 시도 시 배아를 폐기해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지난 16일 냉동 배아도 태아이며 이를 폐기할 경우 법적 책임이 따른다고 판결했다. 앞서 '배아는 아이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기각한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WP는 이를 두고 "전례 없는 최초의 판결"이라며 배아 폐기를 불법화하려는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의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판결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이번 재판은 실수로 다른 부부의 냉동 배아를 떨어뜨려 파괴한 한 환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이에 주 대법원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냉동 배아도 불법 행위에 따른 미성년자 사망 관련 법에 따라 아기와 같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이는 태어났든 안 태어났든 모든 아이에게 제한 없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특히 톰 파커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은 보충의견에서 성경을 인용해 "모든 인간의 생명은 심지어 출생 이전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우지 않고서는 파괴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판사의 종교적 신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WP는 짚었다.

임신중지 옹호 진영은 물론 의료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시험관 시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시험관 시술 시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다수의 배아를 만들어 냉동 보관하기 때문이다. 임신에 성공할 경우 나머지 배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이때 배아를 폐기하는 부모나 의료기관은 이번 판결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임신중지 이슈가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임신중지권 옹호단체인 구트마허 연구소의 켈리 베이든 부소장은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의 폭넓은 범위로 인해 판사와 의원들이 임신중지 이상의 것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각 주 정부들과 법원이 어디까지 더 나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WP에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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