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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문가 ‘송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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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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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송능한(왼쪽) 감독과 셀린 송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CJ ENM 제공

송능한(왼쪽) 감독과 셀린 송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CJ ENM 제공

임권택(88) 감독은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TV로 한 한국 영화를 봤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에야 감독이 자신인 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1976년 연출작 4편을 선보일 정도로 겹치기 촬영이 심할 때였으니 자기 영화를 몰라볼 만도 했다. 임 감독은 이후 영화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미학적 완성도와 더불어 사회적 고민까지 끌어안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 임 감독은 새 영화 여정에서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84)과 자주 함께했다. 두 사람은 이념 대결의 허상을 다룬 ‘짝코’(1980)를 시작으로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3), ‘길소뜸’ ‘티켓’(1986)을 합작했다. 임 감독 영화 이력에서 굵은 글씨로 남은 작품들이다. 송 작가가 없었으면 1980년대 임 감독의 이름이 빛나기도 어려웠다. 송 작가는 ‘깜동’과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불의 나라’(1989) 같은 흥행작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 송길한 작가의 열아홉 살 어린 동생 송능한(65) 역시 시나리오 작가였다. 송능한은 방송 작가를 거쳐 ‘수렁에서 건진 내 딸2’(1986)와 ‘태백산맥’(1995)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송능한은 배우 송강호를 스타덤으로 끌어올린 ‘넘버3’(1999)로 감독이 됐고, ‘세기말’(1999)을 만들며 영화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세기말’ 개봉을 앞두고 영화가 흥행하지 않으면 이민 가겠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영화계 사람들은 그가 2000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하자 깜짝 놀랐다.

□ 송능한 감독의 딸은 재캐나다동포 셀린 송(36) 감독이다. 셀린 송 감독은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다음 달 10일 열릴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로 올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외에서 자란 셀린 송 감독의 삶을 바탕으로 했다. 중년나이에 이역만리로 이주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뇌가 스며 있기도 하다. 셀린 송 감독의 오늘에 가족사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 신인 여성 감독에게 아카데미는 여전히 좁은 문이다. 우린 몇십 년을 기분 좋게 해 줄 미래 대가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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