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의 정교한 외교·산업 정책 절실"...심란해진 국내 반도체 업계 간절해졌다

입력
2024.02.21 08:00
수정
2024.02.21 15:3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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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미국 기업 먼저 움직임에
정부·업계 "삼성전자 보조금, 규모가 중요"
초격차 기술은 안보 안전판
국내 첨단 시설에 투자하게 지원해야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립 예정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립 예정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자국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약 2조 원)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을 비롯해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은 한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 등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 남긴 성과 등을 미국 정치권에 적극 알려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압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첨단 시설은 해외가 아닌 국내에 마련하도록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현지시간) 미 상무부의 발표 후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보조금을 신청하고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22조 원) 투자 계획을 내놓았는데 현재 상무부와 막판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2022년 생긴 반도체과학법은 미국 본토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늘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며 "때문에 파운드리 관련 투자를 한다는 삼성전자도 보조금을 받을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 역시 "(지원) 금액이 크고 검토할 사안이 많아 삼성전자는 결과를 듣지 못했지만 조만간 (지원 결정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보조금을 달라고 신청서를 낸 기업이 170개가 넘어 액수는 애초 기대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인텔파운드리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IFS) 2024' 행사에 참석할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전날 미 정부가 인텔에 보조금과 대출을 포함해 100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지원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직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투자 지역을 결정한 뒤 신청하겠다"지만 심란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지급할 보조금을 평균 투자비의 10~15% 정도로 보고 있지만 그런 보조금을 받을 근거가 되는 미국 내 반도체 시설은 한국·대만과 비교해 30%가량 생산 단가가 더 높다고 평가했다.

이 회사가 미국에 지으려는 반도체 후공정 시설은 미국 정부가 바라는 파운드리와 직접 관계가 없으니 보조금 지급 순위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도 나온다. 반도체 소재를 납품하는 국내 협력업체들도 보조금을 신청했는데 이 업체들이 받을 보조금 규모에 대해서도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 상무부에 "차별 말라"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4월 미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4월 미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소극적 대응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반도체 보조금은) 미 상무부와 개별 기업이 협상해서 만들어 내야 하는 결과물"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진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기업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응책은 두 가지다. 먼저 외교 전술을 세심하게 다듬어 우리 기업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책기관 출신의 한 경제 정책 전문가는 "바이든 정부가 미국 기업을 먼저 보조금 대상으로 뽑았지만 보조금으로 인한 해외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성과를 내세우려면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하려는 곳은 모두 대선 경합 지역"이라며 "반도체 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해야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해도 보조금 등 지원을 접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을 돕되 첨단 반도체 공정만큼은 국내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미국에 첨단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경우 첨단 시설을 국내에 두려는 정부와 이해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은 국내에 짓도록 원칙을 세웠고 이런 시설들이 국가 안보의 안전판 역할까지 하고 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지난해 3분기(7~9월) 3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을 시작해 4분기(10~12월) 매출의 30%를 3나노 공정에서 냈다. 내년에는 2나노 공정에 돌입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에 지은 1공장에서는 12~28나노급 공정제품을 양산할 예정이고,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는 제조 시설에서도 2026년에서야 3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한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반도체 동맹국에 원하는 건 ①첨단 제조 공정을 미국에 많이 지어달라는 것과 ②미중 경쟁에서 미국 정책에 동참해 달라는 것 두 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첨단 시설을 국내에 유지할 수 있게 관련 규제를 풀고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미국 정부에는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적극 돕겠다는 뜻을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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