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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립시다"... 교사·지역주민 함께 '학생 유치전' 안간힘 [17년생 학교 간다]

입력
2024.02.26 14:30

[17년생 학교 간다: ③생존이 목표인 학교들]
학생 37명 청주행정초, 연 1억 들여 통학버스
방과 후 교실 무료 운영하며 골프·코딩 교육
부모에게 주거·일자리 지원해 학교 지키기도

편집자주

2017년생이 초등학교에 갑니다. 2017년은 신생아수가 전년보다 갑자기 5만명이나 급감한 해. 그래서 17년생은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인구절벽’이 시작되는 첫 나이입니다. 교사 수와 학교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학생 수만 팍 줄어드는,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 학교에서 시작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시작이고, 매년 신입생이 눈에 띄게 줄 거라는 점입니다. 우리 학교들은 '축소 시대' 준비를 잘 하고 있을까요? 17년생이 학교에 가면서, 학교와 지역사회에 생기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살펴봤습니다.

충북 청주 행정초 전경. 정다빈 기자

충북 청주 행정초 전경. 정다빈 기자


“통학버스 비용만 연간 1억 원 들어요. 그래도 학교가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청남대(과거 대통령 별장)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행정초를 15일 찾았다. 이 학교 이원혁 교감은 기자를 교무실로 안내한 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씁쓸하게 웃었다. 보드엔 6개 학년의 학생 수가 적혀있었다. 1개 학급으로 운영되는 학년 중 학생이 가장 많은 건 4학년, 8명이다. 이 교감은 "당장 폐교는 안 되겠지만 복식학급(한 학급에 2개 학년 이상을 편성)만은 피하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중 "이라며 "학생 한 명이 정말 소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전전긍긍하는 학교는 청주 행정초만이 아니다. 전국의 많은 초등학교들이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기 위해 '유치 전쟁'에 나섰다. 홍보 현수막을 곳곳에 붙이고, 각종 장학금을 지급하며, 학교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도입해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6년생보다 5만 명이나 적은 2017년생을 맞는 올해부터는, 학생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방과 후 교육비 무료' 같은 파격 조건을 내세우는 초등학교들도 잇따른다.

"방과 후 교육비가 무료입니다"

신입생 유치를 위해 지난 1월 한 아파트 단지 내 부착된 청주 행정초 전단지. 장학금 제공, 방과후 프로그램 무상운영, 현장 체험학습 전액 지원 등 입학시 제공되는 혜택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청주 행정초 제공

신입생 유치를 위해 지난 1월 한 아파트 단지 내 부착된 청주 행정초 전단지. 장학금 제공, 방과후 프로그램 무상운영, 현장 체험학습 전액 지원 등 입학시 제공되는 혜택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청주 행정초 제공

전교생 37명으로 소규모 학교(60명 이하)인 행정초는 올해부터 '공동 일방 학구제'를 운영하면서 전·입학생 모집에 사활을 걸었다. 일방 학구제는 큰 학교 주변 작은 학교를 공동 학구로 묶어, 작은 학교로의 학생 유입을 장려하는 제도다. 행정초는 1월 큰 학교 인근의 아파트 단지 내에 300여 개의 홍보 전단을 돌리고, 현수막도 게시했다. 실제로 전단을 보고 문의를 준 학생 중 2명이 올해 행정초 입학을 결심했다. 입학생들에겐 장학금 30만 원과 가방이 지급된다.

15일 충북 청주 행정초에서 열린 방과 후 '로봇과학'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로봇카 조립에 열중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15일 충북 청주 행정초에서 열린 방과 후 '로봇과학'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로봇카 조립에 열중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교육비 전액 무료라는 조건도 제시했다. 코딩, 로봇과학, 골프 등 다른 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채로운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운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올해 행정초에 입학하는 신주홍(7)양은 “초등학교 가면 전동 비행기도 만들고, 골프도 배운다는데 기대돼요”라며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무료 교육과정의 비용은 시설비를 돌려 쓰거나 교육청 공모사업 등을 통해 충당된다. 행정초는 시설 개선에 쓰일 예산을 줄여,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수학여행 지원금으로 쓰고 있다. 이 학교 이기석(38) 교사는 “학교 예산만으론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감당할 수 없다”며 “교사들이 계획서를 작성해 공모에 지원하고 재정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지키기에 온 마을 나서"

장호원 읍내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있는 마을. 경기 이천시 대서초 역시 신입생 모집을 위해 인근 어린이집 체육대회에서 홍보 전단을 뿌렸다. 대서초 동문회의 도움을 받아 입학 장학금도 100만 원으로 올렸다.

육십령 고개 아래에 자리잡은 경남 함양군 서하초의 경우, 동문으로 구성된 '학생모심위원회'가 적극 나서고 있다. '데려온다'가 아닌 '모셔온다'는 이름에서 절박함이 느껴지는 이 위원회는 초등생 자녀를 둔 가구의 유입과 정착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력해 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함양군과 함께 공공근로 일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작은학교 살리기'에 나선 끝에 학생 유치에 성공한 사례도 꽤 있다. 두륜산 동쪽 자락에 있는 전남 해남군 북일초는 2021년 전교생이 21명이었지만, 현재 50명 정도로 학생이 크게 늘었다. 주민자치회가 주거와 일자리를 지원해 학생 유입을 지원한 덕분이었다. 주민들은 빈 집을 수리해 새로 이사오는 가족들에게 주거 공간을 마련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알선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겐 해외 연수와 도서 무한 지원 서비스도 제공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작은 학교 소멸을 막으려면 학생과 학부모를 동시에 유인하는 특성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청주=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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