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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들이 힘 모아 만든 문학상, '조용한 돌풍'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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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는 이 황량한 시대에 우리들에게 야트막한 사랑을 안겨줄 짧고, 아름다운 작품을 모으려 합니다."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알리는 말 중
문학상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의 축제다. 작가 지망생들은 문예지와 언론사 등이 주관하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인·소설가가 되고, 기성 작가들은 또 다른 문학상들로 성취를 인정받는다. 문턱이 높은 그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 이들에게 문학상은 언감생심이다.
전북 군산에서 독립서점 '마리서사'를 운영하는 임현주(54) 대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상을 만들었다. "책방을 하면서 많은 손님이 글을 쓰려고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등단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이니,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모해볼 수 있는 상이 있으면 어떨까 싶었죠." 18일 전화로 만난 임 대표의 말이다.
'책 생태계 가장 밑단인 동네서점이 예비 작가를 발굴한다'는 아이디어는 지난해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역출판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됐고 군산 서점 대표 11명이 힘을 보태면서 현실화됐다. 응모작 수천 편이 몰리는 열기 속에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의 시작이다.
왜 '초단편'일까. 200자 원고지 70장 정도의 분량을 단편소설로 분류하는데, 초단편 소설은 5~30매면 된다. 임 대표는 "문턱을 낮추려고 '아주 짧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초(超)' 자를 붙였다"며 "기성 형식이나 분량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동될 것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실제 '200자 원고지 1매에서 50매 내외'라는 분량 외에는 응모자격이나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2,719편이 접수됐다. "많아야 500편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뛰어넘은 거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일이 많았는데 전국에서, 해외에서 들어온 응모작을 보면서 벅찬 마음에 피곤한 줄도 몰랐어요."
지난해 6월 공고를 내고 12월 시상식을 진행하기까지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 운영진이 대부분 소규모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낮에는 서점 일을 하고 밤에 공모전 업무를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심사를 맡은 강형철 시인, 류보선 문학평론가, 신유진 작가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며 작품을 읽었다.
그렇게 대상작 '팀버'(이은미)를 포함해 3편의 가작 '호모콰이어트 사피엔스'(박우림), '지옥의 생물학자'(양준서), '갯벌이라는 이름, 어머니'(이생문)와 5편의 우수작이 선정됐다. 수상자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8년 넘게 습작을 한 문예창착과 전공 대학생부터 소설가를 꿈꾸는 20대 작가 지망생, 퇴직 후 글을 쓰기 시작한 70대 어르신까지 글쓰기 이력도, 글을 쓰려는 이유도 모두 다르다. "우리 상을 탔다고 등단 작가로 인정받는 건 아니지만, 참신한 작가들을 발굴했다고 생각해요. 혼자 동떨어져 서점을 운영하는 것 같았는데 연대의식을 확인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파격적인 실험을 올해도 할 수 있을까. 요즘 부쩍 제2회 문학상 개최 여부를 묻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임 대표는 "지난해 업무량과 비용을 헤아려보면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서도 "많은 분이 보내주신 성원과 예비 작가들의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올해부터 지역 서점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는 것. 지난해 문학상의 홍보 문구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황량한 시대'가 그대로 현실이 됐다. "뜻을 모아 새로운 장을 열어 보려고 해요. 황량한 시절에도 신선하고 따뜻한 아이디어는 나오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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