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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송혜교)에서 이탕(최우식)으로... 흔들리는 사적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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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최근 방송된 한국 드라마의 포스터를 모아 놓고 보다가 '모범택시2'(2023)에 시선이 멈췄다.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 대행’을 하는 택시 운전사 김도기(이제훈)와 그의 동료 무지개 운수 직원들이 모범택시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들이 악인들을 응징하며 행했던 잔혹한 복수를 떠올리면 포스터 속 웃음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모두 범죄 피해자의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 웃음은 한없이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사적 제재가 소재인 콘텐츠를 볼 때면 늘 갖게 되는 양가감정이다.
지난해엔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까지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한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범죄자에게 복수하며 사회고발적 메시지를 만드는 소위 '자경단' 콘텐츠가 각광을 받았다. 위 작품들과 달리 피해자가 직접 복수를 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2023년 가장 흥행한 드라마인 '더 글로리' 역시 사적 제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겨냥했다. 지난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모두 법의 바깥에서 가해자를 심판하는 소재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2024년에도 이어질까.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살인자o난감'은 단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딜레마와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적 제재가 야기하는 문제를 질문하듯 파고들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웹툰의 주인공은 무작위로 살인을 저질러도 그 대상이 모두 ‘죽여 마땅한 인물’임이 밝혀지고, 살인의 증거 또한 저절로 사라지는 초월적 살인마 이탕이다. ‘정의롭지 않은 행위(살인)’에 당위가 생기니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윤리적 고민에 빠진다. 이때 작품은 이탕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조력자 노빈을 등장시키면서 군중이 사적 제재를 보며 얻고 싶어 하는 쾌감 속에 진짜 ‘정의’가 있는지, 과연 ‘죽여 마땅하다’는 판단은 정의로운 것인지 질문하고 답변한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은 살인 후에 살인의 당위가 발생하는 원작의 독특한 설정에 충실하며 영상연출만이 해낼 수 있는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특히 ‘이탕’을 맡은 최우식의 연기는 권태롭기만 했던 대학생이 우발적인 살인과 믿을 수 없는 우연을 통해 원치 않게 히어로가 되어 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후반부에 들어 원작 웹툰이 그어 놓은 길과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 원작은 사적 제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제재 자체에 열광하는 군중과, 그러한 불신을 만든 법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사건을 확장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탕, 노빈(김요한), 송촌(이희준), 장난감(손석구)을 대립시키며 ‘사적 제재를 통한 정의구현은 가능한가?’를 직접적으로 묻는다. 다시 말해 드라마는 사적 제재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에 집중한 일종의 히어로물인 셈이다.
2020년엔 성범죄, 아동학대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신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유포한 ‘디지털 교도소’가 징역형을 받았고, 2021년에는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집에 침입해 둔기로 머리를 때린 20대 A씨가 징역형을 받았다. 지난 1월에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의 운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한 유튜버 카라큘라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는 악질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며 ‘법이 미처 실현하지 못하는 정의구현’이라는 환호와 ‘시스템이 없는 개인의 위험한 사적 제재’라는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
사적 제재에 관한 현실의 사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어떤 사건에서는 제재 행위를 옹호하게 되고, 어떤 사건에서는 제재가 위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개인의 가치 판단이 정의의 기준을 만들기에 사적 제재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때 이야기는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갈등을 단순하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히어로를 앞세우거나 ‘좋은 응징’과 ‘나쁜 응징’을 가려내며 모순을 정당화한다. 사람들이 사적 제재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에 집중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전히 답을 하기 어렵지만 확신하고 싶은 한 가지는 애도의 마음이다. 방식에 관계없이 모든 복수극은 비극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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