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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도 더 순해진 소주… 그래 봤자 술은 '1군 발암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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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곤드레만드레”를 인생 신조 삼아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를 읊조리며 퇴근길 후미진 뒷골목 어딘가에서 컬컬한 목을 축이고 있을 주당들에게 얼마 전 기절초풍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민소주 ‘참이슬 후레시’가 알코올 도수를 0.5도 낮춰 새롭게 출시됐다는군요. 자매품 ‘진로 이즈백’, 경쟁사 제품 ‘처음처럼 새로’와 똑같이 16도가 됐습니다. “밍밍해서 어떻게 마시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인생은 여전히 쓰디쓴데, 소주는 그런 우리네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만 순해져서 괜스레 서운해집니다.
제조사는 “저도수 술을 선호하는 경향을 반영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소주 알코올 도수는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참이슬’은 1998년 첫 출시 당시 23도였으나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낮아졌고, 2006년에는 19.8도짜리 ‘참이슬 후레시’가 등장해 20도의 벽마저 깨뜨렸습니다. 이후 ‘도수 낮추기 경쟁’은 더 가열됐습니다. 2018년엔 ‘처음처럼’이, 2019년엔 ‘참이슬 후레시’가 각각 17도로 내려갔고, 2019년 ‘진로 이즈백’이 ‘16도 시대’를 열어젖혔죠. 급기야 지난해에는 14.9도짜리 ‘선양소주’가 출시돼 주류업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1924년 소주가 처음 탄생했을 땐 35도였다는 사실을 애주가에게 들려주니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100년 전과 비교하면 요즈음 소주는 음료수네, 음료수!” 물론 예전보다 확실히 목 넘김이 부드럽고 깔끔해지긴 했습니다. 실험실 화약약품 같았던 특유의 향도 사라졌고요. 16.5도보다는 16도가 왠지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은 ‘느낌적 느낌’도 듭니다.
원래 마시던 양은 그대로이고 알코올 도수만 내려간다면 이튿날 숙취 같은 음주 폐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그러나 술꾼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주가 순해지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마시게 된다는 것을. 취기가 올라야만 술잔을 내려놓기 마련이니까요. 도수가 낮으면 술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일 뿐입니다.
덜 취하면 더 마신다는 사실은 통계청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도짜리 소주가 나온 2006년 연간 소주 출고량은 96만 kL(킬로리터, 1kL=1,000L)로 전년보다 3만 kL 증가했습니다. 도수가 19도로 내려간 2012년에는 95만 kL로 전년 대비 3만 kL 늘었고, 다시 18도로 낮아진 2014년에는 5만 kL 증가한 96만 kL를 기록했죠. 전반적으로 음주량이 줄어드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2022년 16도 소주가 출시되자 소주 출고량은 86만 kL로 전년보다 3만 kL가량 늘어나며 또다시 상승그래프를 그렸습니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도수 술이 음주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17개 시도에서 최근 1년간 술을 마신 적이 있는 만 19세 이상~70세 미만 성인 2,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류를 선택하는 기준’을 묻는 문항에 ‘도수가 낮은 술’이라고 답한 비율이 25%를 차지했습니다. ‘같이 음주하는 사람이 원하는 술’ 35.5%, ‘안주와의 궁합’ 26.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죠. 연구진은 “도수가 높은 술을 꺼리는 소비자가 저도주(酒)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저도주 출시는 소비자의 음주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저도수 술이 더 위험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2018년 한국사회보장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소주 도수 변화가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 처방 건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2003~2015년 소주 알코올 도수가 22도에서 17.8도로 낮아지는 동안,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급성중독, 의존증후군, 금단상태, 기억상실증후군 등)와 관련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된 요양급여 건수는 6만1,464건에서 14만717건으로, 건당 요양급여비용은 80만3,780원에서 149만3,607원으로, 건당 급여비는 64만2,442원에서 113만227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2011~2014년 데이터를 대상으로 실업률, 가구소득, 물가, 스트레스 인지율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소주 도수 변화와 알코올 사용 장애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자못 충격적입니다. 소주 도수가 1도 내려갈 때 인구 10만 명당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 처방 건수가 한 분기에 약 2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지속적으로 도수가 낮아진 소주가 ‘음주율’(최근 1년간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과 ‘고위험 음주율’(1회 평균 음주량이 7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음주)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 처방 건수가 증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술맛 떨어지는 얘기를 하나 더 들려드릴까요.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보다 술을 약간 마시는 것이 혈액순환을 촉진해 건강에 이롭다는 통념도 ‘거짓’이라고 합니다.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는 사람들 그룹에 암이나 간경화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이 포함됐기 때문에 이 그룹의 건강이 더 나쁜 것처럼 왜곡된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죠. 과거에는 건강에 좋은 ‘적정 음주량’이라는 개념도 있었습니다. 국제암연구기금 기준으로 남자는 하루 두 잔, 여자는 한 잔이었죠. 하지만 이제 그런 기준은 사라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적정 음주량은 ‘0’이라고 선언했고요.
술의 해로움은 알코올 도수가 아니라 섭취한 순수 알코올 총량에 비례합니다. 도수가 높든 낮든 모든 술은 자주 많이 마실수록 몸에 나쁩니다. 술은 ‘1군 발암물질’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알코올 50g을 섭취하는 경우 술을 안 마시는 사람에 비해 유방암 발생률은 5배, 대장암 발생률은 4배 높아집니다. 유럽은 “술 종류에 상관없이 음주량을 줄이고,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암 예방에 더 좋다”고 암예방 가이드라인에 명시했습니다. 캐나다도 “만약 술을 마신다면 하루에 2잔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권고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알코올 도수를 아무리 줄여도 술은 술입니다. 건강한 음주 방법이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이슬이 진짜 이슬에 가까워진다 해도 말입니다. 다가오는 새봄에는 1군 발암물질과 ‘헤어질 결심’을 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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