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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이강인 두 번 죽인 축구협회 그리고 클린스만

입력
2024.02.16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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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모습. 연합뉴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사건이 터졌다. 국민적 관심이 폭발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4강전 하루 전날 손흥민(32·토트넘)과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사태는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축구협회의 행보는 더 충격적이다. 지난 14일 오전(한국시간) 영국 매체 더 선에서 손흥민의 손가락 탈구가 이강인 등 후배들과 몸싸움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카타르 아시아컵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더 선은 한국대표팀의 내분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다. 문제는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 보도하는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폭로에 폭로를 추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에 주먹 다툼이 있었다", "일부 고참급 선수들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이강인을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 했다" 등 중구난방 여러 '입'을 통해 축구협회발 기사가 양산됐다.

외신의 보도 내용을 신속하게 "맞다"며 인정한 것도 모자라 축구협회가 나서서 폭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형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시안컵 졸전, 4강 탈락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던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의 책임론을 무마하기 위해 축구협회가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오죽하면 축구 팬들 사이에선 '축구협회가 더 선에 제보했다' 등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대표팀을 지키고 관리해야 할 축구협회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게 만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다.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커졌으면 진상조사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징계를 내려 재발방지에 힘쓰는 게 축구협회가 할 일이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회 등을 조직하기는커녕 여러 입으로 사건만 키웠다. 심지어 축구협회 내부에서조차 이런 입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입을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운영이 결국 역대급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축구협회 내부에서조차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손흥민(가운데)이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요르단과 경기에서 0-2로 패해 탈락한 뒤 경기가 고개를 숙이고 아쉬워 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왼쪽)과 차두리 코치는 낙담한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손흥민(가운데)이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요르단과 경기에서 0-2로 패해 탈락한 뒤 경기가 고개를 숙이고 아쉬워 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왼쪽)과 차두리 코치는 낙담한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아울러 클린스만 감독 선임도 실패했다는 걸 증명했다. 전술, 전략보다 선수단 매니지먼트에 더 능력이 있어 선임했다던 클린스만 감독의 리더십은 그 어디에서도 발휘되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부임 이후 1년 간 추구하던 '자율 축구'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아서 하라'며 전술 하나 없던 그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선수들 간 불협화음에도 방임했다. 선수들끼리의 마찰을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틀 만에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향한 건 물론이고, 15일 열린 전력강화위원회에서 4강 탈락의 원인을 "손흥민과 이강인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선수 탓을 한 부분은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급기야 이강인은 이날 "손흥민에게 주먹질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 입장을 냈다. 진실공방으로 일이 더 커질 조짐이다. 다음 달 중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을 앞두고 선수들이 이러한 축구협회를, 대표팀을 믿고 합류할 수 있을까. 축구 팬들은 "정몽규 회장과 클린스만 감독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국대 보이콧하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국제적 망신의 희생양이 되고, '원팀'으로 묶지 못한 축구협회와 감독을 향한 강한 질타다.

전력강화위원회는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대표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경질에 뜻을 모아 축구협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만 경질한다고 이번 사태가 종결될까. 이번에 드러난 총체적 난국의 원흉은 축구협회다. 지난 10년간 바뀌지 않고 구태를 이어가는 정몽규 체제 탓이 크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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