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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건국전쟁', 文 '택시운전사'… 정치에 이용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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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이자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진실을 담아낸 작품이다."(윤석열 대통령)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로 4·19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다."(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4·10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지난 1일 개봉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에 대한 정치권 반응이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당 정치인들의 릴레이 관람이 이어지면서 개봉 1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48만 명을 넘었다.
정치권이 들썩이는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영화 흥행에 힘입어 지지층 결집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거나 이념 논쟁으로 번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과거 영화가 정치에 이용된 사례를 되짚어봤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정치적 논란을 넘어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2013년 진보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은 '이승만 죽이기' 논란을 촉발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사적 권력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에 굴종해 한국 경제성장의 공을 가로챈 것으로 그려졌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공과를 두고 이념 논쟁이 벌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3년 8월 '백년전쟁'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훼손했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 조치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내보낸 시민방송(RTV)이 제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두 전 대통령을 희화화했을 뿐 아니라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 및 재구성 했다"며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논쟁이 촉발된 지 6년이나 지난 2019년 11월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거나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3년 정치권을 달궜던 소모적인 논쟁은 이미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각 정치 진영이 선호하는 영화의 성격도 달랐다. 보수 정권에서는 산업화나 안보 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로 이용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 '국제시장'(2014), '연평해전'(2015), '인천상륙작전'(2016) 등이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흥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을 관람하며 이산가족 상봉 장면 등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진보 진영은 민주화 영화를 환영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2007)가 개봉했을 당시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이해찬 전 총리 등 범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영화를 관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문재인 정부 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택시운전사'(2017), 6월 항쟁이 배경인 '1987'(2017),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2020) 등이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와 배우 송강호 등과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문 전 대통령은 관람 후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면서 "이 영화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987'을 보고도 "역사가 금방은 아니지만 긴 세월을 두면서 뚜벅뚜벅 발전해 오고 있고,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정치권에서 악용됐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등 영화가 흥행하자 야권 일각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꾸려진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윤석열 정부의 '검찰 권력'에 빗대 정치적 공격 도구로 삼았다.
야권 인사들은 "군부 독재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검찰 독재로 모습과 형태만 바뀌었다"(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육사 사조직에 기초한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대한군국'을 만들었고, 일부 정치 검찰 라인이 '대한검국'을 만들고 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고 정권 비판에 영화를 대입했다.
보수 시민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의 봄'을 단체 관람한 고등학교 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영화 속의 허구를 역사적 사실과 혼돈하고 왜곡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역사적 사실을 정쟁으로 비화하려는 의도"라며 즉각 반박했다. 검찰은 같은 달 29일 "혐의 없음이 명백하다"며 각하 처분했다.
전문가들은 '영화의 정치화'에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기대와 소모적인 논쟁으로 정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근현대사 관련 영화들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좌우 진영을 떠나 역사의 배경을 국민들에게 알려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 거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관객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진영 대결을 통해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겠지만 일방적 영웅화에 거부감을 느껴 이탈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라며 "사회를 분열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면 정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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