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사 막으려고? 쿠팡 '블랙리스트'에 기자들도 있었다

입력
2024.02.15 19:19
수정
2024.02.15 20: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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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사건팀 기자 정보 대거 수집
대책위 "잠입취재 방지 목적 추정"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권영국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권영국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류업체 쿠팡이 잠입취재나 탐사보도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언론사 기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한 뒤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리스트에는 기자의 소속과 휴대폰 번호 등 신상정보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이를 취재 봉쇄 목적으로 활용했다면 명백한 위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시민단체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쿠팡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노동자 1만6,450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관리했다. 주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일용·계약직 노동자들의 정보로 추정된다. 대책위는 "노동자를 재취업에서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블랙리스트로 보인다"며 "근로할 권리를 침해하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쿠팡 노동자 외에 언론인도 대거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 실태나 획일적 기업 문화 등 문제점을 보도한 기자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폭염 속 쿠팡 물류센터의 근무실태를 취재한 한 일간지 기자는 보도 닷새 만에 '허위사실 유포'를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등재됐다. 비판적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당일 리스트에 등록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측은 관련 취재를 하지 않아도 수십 명의 중견기자를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7일 38개 언론사 기자 71명이 대거 등재됐는데, 이들 대부분이 각 언론사 사회부 사건팀의 팀장 및 부팀장으로 확인됐다. 관리 사유도 허위사실 유포, 정보등록 센터는 '잠실센터'로 동일했다. 잠실은 쿠팡 본사와 계열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김병욱 대책위 변호사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언론도 관리해 사업장 모순 등 문제 제기를 아예 틀어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기사를 직접 쓰지 않았지만 취재 지시를 할 수 있는 위치의 중견기자들이 포함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업체가 비공개가 원칙인 기자 신상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하고 활용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의견이 많다. 법무법인 훈민의 이수열 변호사는 "정보 주체인 기자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이날 낸 입장문에서 "블랙리스트는 노동권과 언론자유를 침해한 중대 범죄"라며 "고용노동부에 쿠팡을 상대로 한 특별근로감독을 즉시 요구하고 언론인 개인정보침해와 취재 방해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쿠팡 측은 전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직원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며 블랙리스트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 언론인까지 리스트에 포함시켰느냐는 질문에는 "불법촬영으로 인한 초상권 침해나 기밀 유출이 우려돼 현장 관리 차원에서 기재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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