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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 빼먹는 할아버지들

입력
2024.02.15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1980년대 미국 지상파TV 뉴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ABC, CBS, NBC 3대 채널이 간판급 뉴스진행자를 내세워 시청률 전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3명의 스타급 앵커가 탄생했다. 톰 브로코(NBC)와 피터 제닝스(ABC), 댄 래더(CBS)였다. 특히 브로코는 애국심과 통찰력으로 유명했다. 1998년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에서 ‘2차대전 참전세대’(1900~1925년생)를 극찬했다. 사회학자들도 그에 맞춰 미국 인구를 ‘위대한 세대’, ‘침묵 세대’(1928~1945), 베이비붐 세대(1946~1964)로 나누기 시작했다.

□브로코가 2차대전 참전세대를 ‘위대한 세대’라고 불렀던 건 끈질긴 적응력과 진취적 정신으로 20세기 초강대국의 부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공황의 와중에 자라났으며 청년기에는 2차대전에 참전했다. 스스로는 힘든 삶을 살았지만, 막대한 부와 민주적 전통을 완성해 자녀 세대에게 유례없는 풍요를 선사했다.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등 6명의 미국 대통령이 배출됐다.

□한국에서는 1925~1944년 무렵 출생한 세대가 ‘위대한 세대’와 유사하다. 식민지와 6·25의 참상을 겪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월남, 중동에서 돈 벌어온 고도성장의 주역이었다. 50대 이하 대한민국 국민들의 여유는 이들 세대의 노력 덕분이다. 다만 미국의 같은 세대와 다른 건, 정작 자신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갖추지 못하고 은퇴해 상당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연금특위 논의가 ‘더 내고, 더 받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보험료율(현재 9%)을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40%)을 50%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더 내지만 더 받고, 기금고갈 시점을 7년가량 연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무난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무난해 보이는 비결은 뭘까. 다음 세대에 702조 원의 적자를 추가로 떠맡기는 구조다. 지금 50대 이하가 ‘등골 빼먹은 조상’이란 비판을 면하려면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유일하다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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