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위험군' 5명 중 1명..."정부가 관리해야" 50%

입력
2024.02.17 04:30
13면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2018년 영국 정부가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직을 신설한 데 이어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총리 관저 내각 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외로움이 일부 사람이 간헐적으로 겪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회적인 의제라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외로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실태와 인식을 파악해 보고자 2023년 12월 8~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는 2018년 1차 조사에 이어 5년 만에 시행한 2차 조사이기도 한데,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의 외로움 수준이 5년 전과 비교해 어떤지 알아보고 현재 외로움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외로움에 우리 국민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는 무엇일지 살펴봤다.

"항상 외롭다" 5% "자주 외롭다" 14%


최근 한 달 동안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2%가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5년 전인 2018년 4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동일한 방식으로 질문한 결과 77%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것과 유사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가 외로움을 '거의 항상' 느꼈다고 답했으며, '자주' 느꼈다는 응답도 14%여서 5명 중 1명은 외로움에 상시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외로움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외로움을 상시(항상+자주) 느꼈다는 응답자를 분석한 결과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돈’과 ‘가족’이 관건이었다. 월평균 소득 200만 원 미만에서는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이 32%로, 월소득 700만 원 이상(15%)보다 2배나 높다. 소득이 아닌 주관적 계층 인식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본인이 ‘하’층이라고 한 경우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이 22%로 중상층(14%)보다 높다. 1인 가구에서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은 24%로 2인 이상 가구(18%)보다 높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이 높은데, 특히 사별·이혼한 경우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이 33%로 기혼(16%)이나 미혼(20%)과 큰 차이를 보였다. 형제가 없는 경우에도 31%가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해 형제가 있는 경우(18%)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다만, 자녀 유무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친밀한 지인 많을수록 외로움 덜 느껴

외로움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여부’와 관련이 있는 사회적 지지망과도 연관성이 높았다. 본 조사에서는 사회적 지지망을 ‘내가 갑자기 연락 두절되었을 때, 나의 안부(생사)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 ‘몸이 아파서 거동하기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등 총 7개 문항으로, 각각의 유무를 질문해 파악해봤다. 그 결과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자에 비해 사회적 지지망이 ‘있다’는 응답이 모든 항목에서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특히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응답자 층에서는 94%가 ‘있다’고 답했으나, 상시 외로움을 느끼는 응답자 중에서는 56%만이 ‘있다’고 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평소 친밀한 관계의 지인 수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평균 5.1명, 외로움을 상시 느끼는 응답자는 3.9명으로 조사됐다. 외로움을 상시 느꼈다는 응답자 층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지인이 없다(0명)는 응답도 14%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사회적 지지망과 응답자 개인의 경제상태나 가정환경의 관계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사회적 지지망이 ‘있다’는 응답이 높고, 본인의 계층이 중상층이라고 응답한 경우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에 비해 모든 항목에서 사회적 지지망이 ‘있다’는 응답이 10%포인트 이상 높다. 또한 2인 이상 가구를 이루고 있는 응답자가 1인 가구보다 모든 항목에 대해 사회적 지지망이 ‘있다’는 응답이 10%포인트 이상 높다, ‘몸이 아파서 거동하기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해야 하는 경우, 집안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25%포인트 이상 높다. 자녀의 유무에 따라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배우자나 형제가 있으면 없는 경우에 비해 사회적 지지망이 ‘있다’는 응답이 전반적으로 높다. 결국 ‘사회적 지지망’이나 ‘외로움이란 감정’ 모두 개인이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이 처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산층은 관계지향적 활동, 하층은 비대면 활동 통해 외로움 대처

외로움을 느낄 때 주로 하는 행동도 경제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응답자 특성에 상관없이 ‘TV/유튜브/OTT 시청’이 부동의 1위이지만 중산층에서는 미디어 시청에 이어 ‘가족 외 친한 사람들과 교류’(40%), ‘운동이나 문화생활 등 취미 활동’(36%) 순으로 답했다. 반면 주관적 계층인식이 ‘하’인 응답자 층에서는 미디어 시청에 이어 ‘PC·스마트폰 검색이나 게임’(35%), ‘운동·문화생활 등 취미활동’(33%) 순으로 답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중산층은 ‘운동·문화생활 등 취미활동’(49%)을 1순위로 꼽았으며 다음으로 ‘가족 외 친한 사람들과 교류'(46%), ‘TV/유튜브/OTT 시청’(42%) 순으로 응답했다. 반면, 하층에서는 ‘TV·유튜브·OTT 시청’(51%), ‘가족 외 친한 사람들과 교류'(43%), ‘운동·문화생활 등 취미활동’(39%) 순이었다. 중산층에서는 관계지향적인 활동을 외로움의 대안으로 꼽은 반면 하층에는 미디어 시청이나 PC나 스마트폰과 같은 비대면 활동을 선택한 것이다.

각종 모임에 소속돼 있는지 질문한 결과에서도 중산층이 하층보다 동창회, 취미/문화/학술모임 등에 소속돼 있다는 응답이 높았다. 이처럼 개개인의 경제 상황에 따라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외로움을 상시 느끼는 사람은 걱정, 짜증,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더 많이 느끼고 있었다. 외로움이 일상화된 응답자 중에서는 93%가 항상 또는 자주 ‘걱정’했다고 답했다. ‘짜증’을 상시 느꼈다는 응답은 64%였으며, ‘분노’도 57%에 달했다. 이는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응답자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즐거움’, ‘편안함’, ‘행복감’, ‘자존감’, ‘흥미로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항상 또는 자주 느꼈다는 응답은 30% 수준으로,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응답자의 절반 수준이다. 외로움은 외로움 자체만의 정서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관련한 전반적인 정신 건강에도 광범위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외로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로움 문제를 현실에 부합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외로움을 정부의 의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지 질문할 결과 응답자 10명 중 5명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2018년 4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같은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던 것에 비해 10%포인트가량 증가한 수치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문제는 아니다는 응답은 46%에서 36%로 감소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 상담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11%였으며, 응답자의 10%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상시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자 중에서는 40%가 상담이나 약물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해소 방법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에 맞서기 위한 이러한 개인의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보다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해 본다.



최선아 한국리서치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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