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무죄 근거가 된 '정경심 판례'... "압수수색에도 선별 절차가 필요"

입력
2024.02.15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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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승계 의혹' 1심 판결문 분석]
증거 1만9000개 중 3700여개 배제
항소심서도 증거능력이 최대 이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이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은 결정적 요인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줄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증거은닉 혐의로 확보한 압수물품의 증거능력을 법원이 부정하면서, 검찰이 범죄를 입증할 논리가 기초부터 무너지고 말았다는 평가다. 검찰의 항소로 이어질 2심에서도 이들 증거의 인정 여부에 따라 판세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위법 수집 증거는 유죄 근거 못 돼"

14일 이 회장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검찰이 제출한 자료 약 1만9,000개 중 증거능력이 부정된 자료는 3,700여 개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2019년 5월 7일 압수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8테라바이트(TB) 용량 백업 서버 △같은 달 3일 확보된 삼성바이오에피스 네트워크 연결 스토리지(NAS) 서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폰 속 메시지 등이 채택되지 않았고, 이들을 토대로 한 2차 증거 전부 인정받지 못했다.

증거능력이 부인된 주 이유는 '절차적 위법성'이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사생활과 재산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취지다. 예컨대, 검찰은 국정농단 수사 때 확보한 장 전 차장 휴대폰 자료를 이 사건에서도 활용했지만,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파일엔 가족 간 안부 연락이나 광고 문자 등이 다수 포함됐다. 사건과 무관한 자료가 선별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공개된 것이다.

"증거도 선별해서 취급해야"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특히 사건의 '전환점' 격이었던 삼성바이오 및 에피스 내부 문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2019년 5월 3일 에피스 직원 자택에서 NAS 서버를 발견하고, 이틀 뒤 삼성바이오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장 바닥을 뜯어 자료를 묻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증거인멸'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18TB 서버를 압수했다.

검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확보한 이 자료들을 두고 '저장매체에 대한 영장이 증거인멸 혐의로 발부됐다면, 그 안에 있는 자료 전체를 압수수색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검찰은 "서버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닉'이라는 범죄 행위의 직접 증거가 되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 측은 "이때 역시도 인멸하려는 범죄와 관련된 자료만 골라서 압수했어야 한다"고 맞섰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 속에 재판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확인서 발급 판례를 기준으로 삼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로부터 PC 저장매체 은닉을 부탁받은 김경록씨가 이를 검찰에 제출한 것에 대해 "(제출 이후) 자료 선별 등 과정에 김씨의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재용 재판부는 이 결론의 전제인 '증거인멸 혐의로 압수된 물품도 선별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2심서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키'

결국 1심의 유∙무죄 판단에서 주요 자료들이 배제되면서, 항소심이 이들의 증거능력을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 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 자료 상당수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와 관련된 문건이라는 점을 근거로, 증거가 효력을 갖지 못할 경우 분식회계 혐의는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해당 서버 속 자료를 근거로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이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위법 수집 증거의 벽을 검찰이 어떻게 돌파할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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