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든 트럼프, 웃는 푸틴

입력
2024.02.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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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말 그대로다. 블라디미르 푸틴한테 도널드 트럼프(Trump)는 이기는(Trump) 카드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유럽·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피오나 힐. 그가 지난해 12월 영국 비밀정보국(MI6) 전 국장인 리처드 디어러브 경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원 디시전'에 나와 한 말이다. "푸틴은 한동안 트럼프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다. 푸틴에게 트럼프는 자산(asset)이다. 그는 트럼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너무 잘 안다." 서방에서 손꼽히는 '푸틴 전문가'인 그는 힘주어 말했다.

결국 와버렸다. 세계 대통령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트럼프에 대비해야 할 때가. 미 대선 후보를 결정지을 공화당 경선은 이제 막 시작됐고, 11월 본선까지 9개월이나 남았다. 트럼프가 또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때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의 늪에 빠진 가운데, 정확히 2년 전 이 전쟁을 밀어붙인 푸틴이 다음 달 대선에서 러시아의 5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상태다. 세상은 안 무너지겠지만, 세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와 푸틴이 어떤 지도자인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하필, 트럼프는 더 거칠어졌다. 동맹의 가치를 뭉개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최근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집권 1기(2017~2021년) 때도 동맹국들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고 협박했다. 그런데 이번엔 한 수 더 뜬다. 폭탄 발언 수준이다. 방위비를 올리지 않은 나토 회원국을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세계가 경악했다. 트럼프의 도발은 분명 진화했다. 재집권을 위해 칼을 간 게 아니라, 아예 칼을 들고 나왔다.

푸틴이 웃고 있다. 이미 트럼프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미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안 의회 통과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무기 부족, 정확히 말하면 비어 가는 포탄 곳간을 채울 돈이 모자라 신음 중이다. 미 CNN 방송의 프리다 기티스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가 "트럼프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의미의 트럼프 대선 구호)로 불리는 그의 충성파는 우크라이나 침공 2주년을 맞아 푸틴을 위한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더 신랄하다. "트럼프는 과거의 유령이 아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현재를 괴롭히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쁠 것 없는 트럼프와 푸틴. 두 '스트롱맨'의 파고가 세계의 저항력을 시험할 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대비돼 있나. 동맹을 돈으로 보는 트럼프는 재임 기간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한 전력이 있다. 그가 다시 백악관을 차지한다면 주한미군 감축 요구 등은 상수(常數)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푸틴은 김정일 집권 시기 이후 24년 만에 방북할 시점을 저울질하며 북한과 그 어느 때보다 밀착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전쟁을 입에 올리는 김정은까지. 우린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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