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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넘어 딥소트 물결 온다' 에피카 과학자문 맡은 이관민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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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달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난과 기근, 각종 갈등을 넘어선 사회통합 등은 아무리 AI와 정보기술(IT)이 발달해도 기술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이다.
그래서 대두되는 것이 과학기술과 결합되는 인문학적 성찰이다.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기술에 인문학적 지식을 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생기업(스타트업) 에피카의 최고과학자문(CSA)을 맡고 있는 이관민(52) 싱가포르 국립 난양공대 교수는 이를 '딥소트'(Deep thought)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딥소트는 한마디로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다. 이 교수는 딥소트가 핵심 기술(딥테크)을 뛰어넘어 인류의 미래를 끌고 갈 동력으로 본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딥소트에 대해 들어 봤다.
이 교수는 국내 최초로 융합기술을 도입한 인물이다. 융합기술이란 인문학적 지식이 결합된 기술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서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듯 화면을 쓸어 넘기고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여 지금 듣는 노래의 앞뒤 곡을 찾는 기술은 사람에 대한 성찰에서 나왔다. 그 결과 사람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기기를 다루며 편안함을 느낀다. 스마트폰 '아이폰', 디지털 음악 재생기 '아이팟' 등 혁신적 제품을 내놓은 애플의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는 생전 "애플은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인문학과 기술을 결합하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주립대와 스탠퍼드대학에서 미디어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8년간 사람들의 가상 세계 체험을 다룬 현실적 존재감(presence) 이론을 연구해 명성을 쌓으며 29세 때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 교수, 35세 때 USC 종신 교수가 됐다. 현실적 존재감이란 사람들이 게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겪은 가상 경험이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이를 활용하면 사람들이 기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좋은 기술과 제품, 서비스를 만들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그러려면 사람에 대한 연구를 먼저 해야죠."
그는 2009년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적 인재 육성을 위해 USC를 휴직하고 성균관대에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를 만들어 인문학과 공학, 예술 등을 결합한 융합학문을 도입했다. 그의 제자들은 지금 국내외 유수 대학 교수로 활동하거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대기업 임원, 스타트업 대표 등으로 활동한다.
이를 주목한 삼성전자는 이 교수를 최연소 상무로 영입해 디지털 제품의 이용자 경험(UX)을 연구하는 UX그룹을 만들었다. 그 당시 연구 결과가 스마트TV 등에 반영됐다. "삼성전자로 옮기며 지식재산권 문제 등이 걸려 있어 USC 교수를 그만뒀죠. UX그룹장 시절 삼성전자에서 사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C랩의 초대 임원도 맡았어요."
그렇게 삼성에서 5년간 일한 그는 2017년 싱가포르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꼽히는 난양공대의 제의를 받아 다시 강단에 복귀했다. "열심히 일하며 많이 지쳤어요. 그래서 다시 학교 생활이 그리웠죠."
난양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영학과 교수로 일하며 위킴위통신정보스쿨의 UX연구소장을 겸하는 그는 전공을 살려 AI 윤리 문제 등 사람과 디지털의 상호작용을 다룬 휴먼컴퓨터인터랙션(HCI)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 성과 덕분에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에서 연구실적 상위 0.1% 연구자를 대상으로 전 세계 학자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석학회원에 선정됐어요. 지금까지 발표 논문이 1만 건 이상 인용됐죠."
이 교수가 주창한 딥소트는 일관되게 연구한 융합기술에서 발전했다. "딥소프트는 그동안 인류가 축적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지식들의 덩어리죠. 빈곤, 환경, 사회통합 등 인류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깊숙이 이해하기 위한 지식의 총합이죠."
이런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지식들이 기술과 결합했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딥소트가 혁신을 촉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단순 기술 변화만 추구하는 디지털 전환으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아요. 세울 수 있는 치약 뚜껑처럼 피상적 변화만 일어나죠. 이것이 기술만 집중하는 딥테크의 한계죠."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만 추구했을 때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예로 그는 미국의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를 들었다. 그는 테슬라가 사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놓친 부분을 짚었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영업사원에게 의존해 판매하던 대면 판매 방식을 테슬라는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비대면 방식으로 바꿨죠. 그런데 테슬라의 온라인 판매는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소비 행위를 하는 체리슈머에게는 적합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맞지 않아요.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은 전문가가 자동차 추천부턴 등록, 보험 가입까지 한꺼번에 해주기를 원하죠. 또 차량 판매 후에도 지속적 관리를 원해요. 테슬라는 이런 소비자들까지 헤아리지 못했죠."
사람에 대한 연구가 제품과 서비스 개발로 이어질 때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때 기능과 기술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제품에 결합해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요.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제품 등이 대표적이죠. 이것이 곧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ESG)를 염두에 둔 경영이죠. 결국 ESG 경영도 딥소트와 연결돼요."
그런 점에서 이 교수는 딥소트를 새로운 혁신의 물결로 꼽았다. "딥소트가 딥테크를 뛰어넘는 새로운 혁신의 물결이 될 겁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적으로 풀기 힘든 문제들을 딥소트를 접목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죠. 특히 스타트업들 사이에 이런 변화가 많이 나타나요. 대기업들은 기존 방식을 한꺼번에 뒤집기 힘든 한계가 있어요."
그가 국내 스타트업 에피카의 CSA를 맡은 이유다. 에피카는 서류 작업에 의존했던 영업사원(딜러)들의 자동차 판매를 디지털로 바꾼 'DMS'를 개발했다. DMS를 이용하면 신차 입고와 판매, 출고, 시승차 예약까지 모두 인터넷으로 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BMW코리아와 BMW의 국내 공식 판매업체 7개사가 에피카의 DMS 중 일부 기능을 도입했다. "한보석 에피카 대표와 주요 주주들이 2022년 싱가포르에 와서 CSA를 제안했어요."
에피카에서 그가 하는 일은 전략 자문이다. "에피카를 통해 소비자들이 혁신적인 자동차 구매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연구해요. 또 직원들에게 딥소트 교육도 하죠."
에피카는 딥소트를 이용해 소비자 사업(B2C)을 새로 추진한다. "에피카는 기존 기업간거래(B2B) 사업 외 새로 B2C 사업을 준비해요. 구입자들의 차량 유지 관리부터 중고차로 되파는 과정까지 모두 다루는 종합 솔루션이죠. 이를 위해 한국 소비자, 딜러, 블로거, 유튜버 등을 수개월에 걸쳐 연구하고 분석했어요. 테슬라의 불완전한 온라인 판매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서죠."
딥소트가 결합된 에피카의 결과물은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연말 시험판 형태로 결과물이 나오면 B2C 사업을 새로 시작해요. 이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요 자동차 판매업체 여러 개를 인수할 계획입니다. 관련 투자도 받았죠."
이와 함께 에피카의 아시아 지역 진출도 돕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7년간 교수 생활을 하며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초청 강연 등으로 인맥을 넓혔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두물머리, 컨스택츠, 오투오 등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 "금융기술(핀테크) 스타트업 두물머리의 싱가포르 진출을 도왔죠. 두물머리는 AI를 활용한 투자 방법을 개발했죠."
중요한 것은 딥소트의 수익성이다. 기업들이 딥소트로 돈을 벌 수 있어야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딥소트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벤처투자사(VC)와 육성업체(AC)를 설립할 예정이다. "인구 감소, 빈곤, 환경오염 등 사회 문제를 기술을 접목해 풀려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많아요. 이들을 VC와 AC로 지원하고 싶어요."
딥소트 VC는 기존 VC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단순 자본 투자에 그치는 기존 VC와 달리 돈 많은 후원자와 지식인, 전문가 집단을 기업과 연결해 주는 새로운 형태의 VC죠."
연내 이 교수는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딥소트 VC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미 딥소트 VC와 AC 설립에 동조하는 후원자들이 나서고 있어요. 그만큼 스타트업들에 투자할 펀드 구성을 걱정하지 않아요. 싱가포르에 국내외 투자업체와 기관들이 많이 있어서 이들과 손잡을 수도 있어요."
앞으로 그는 딥소트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다. "딥소트 관련 책도 쓰고 연구를 계속하면서 향후 10년간 딥소트 VC를 통해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아시아의 젊은 창업가들을 육성하고 싶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걸어온 삶의 목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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