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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했지만, 몰카 아니다?... 검찰로 넘어온 황의조 사건 쟁점은

입력
2024.02.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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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몰카·수면·만취 촬영엔 엄격 잣대
연인 촬영엔 '묵시 동의' 판단 엇갈려
사건 당시 관계·대화 내용 쟁점 될 듯

2023년 6월 부산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페루의 경기에서의 황의조. 연합뉴스

2023년 6월 부산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페루의 경기에서의 황의조. 연합뉴스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황의조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경찰이 황씨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일단락됐다. 이제 공은 검찰에 넘겨졌지만, "합의된 촬영"이라는 황씨 측 주장과 "동의 없는 몰카"라는 피해자 측 주장은 당장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불법촬영 혐의의 주요 쟁점인 '인지'와 '동의'에 대한 양측 주장이 극명하게 배치되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향후 사법처리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황씨 측은 피해자가 동영상 촬영을 알고, 동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휴대폰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고 촬영한 만큼 불법이 아니고, 유포범을 처벌해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 피해자 측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촬영하는 걸 알았을 때는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뒤늦게 촬영한 걸 알게 된 경우에는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범행 결과물로 지목된 영상들은 황씨가 "영상이 유출됐다"고 알려줘 그 존재를 알게 된 '몰카'였다는 취지다. '인지'와 '동의'라는 쟁점 모두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촬·수면 촬영 엄벌하는 법원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한 성적 촬영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황씨에게 적용된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했을 때' 성립한다. 공공장소에서의 '도둑 촬영' 등 비동의촬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생긴 처벌 조항이다. 누가 봐도 이른바 '몰카'라면 법원은 꽤나 일관성 있게 처발하고 있다.

공공장소 뿐만 아니라 사적 공간에서 촬영된 영상도 상대가 촬영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처벌 가능성이 높다. 연인 관계라고 할지라도 특히, 상대가 △잠을 자고 있거나 △판단능력이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게 분명할 때 그렇다. 의식 없는 상대방에 대한 촬영은 '의사에 반할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2020년 8월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술에 취해 나체로 잠든 연인의 신체 등을 몰래 촬영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1·2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먼저 촬영물의 존재를 말했고 이를 피해자에게 전송하기까지 했다"며 범행의 고의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만취해 판단능력이나 대처능력을 결여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다"면서 "촬영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했다고 보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 처한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거부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해 동의를 한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의식 분명' 연인 촬영, 엇갈리는 판단

반대로,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상대가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라면 사건마다 판결이 엇갈렸다. △피고인과 피해자와의 관계 △성생활의 경향성 △해당 사건 성행위의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묵시적 동의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사안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가수 정바비(본명 정대욱) 사건은 촬영 당시 피해자와의 관계를 근거로, 명시적 동의가 없던 촬영에 대해서도 묵시적 동의를 인정한 대표적인 판결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던 정씨가 굳이 피해자 모르게 성관계 장면을 촬영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전날의 성관계 동영상 촬영에 피해자가 동의했다면 (다음날 이뤄진) 다른 동영상 촬영도 피해자가 반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촬영 구도나 장소, 환경에 비추어 피해자가 촬영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2022년 2월 "어두운 방안에서 휴대폰 플래시를 켜 촬영한 점, 좁은 방안에 둘만 있어 촬영 시작·종료 효과음을 들을 수 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도 촬영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할 때, 상대방이 촬영 사실을 인지하고도 거부하지 않은 것은 동의 또는 묵인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항소심도 1심과 같인 판결했고, 최종 확정됐다.

황의조 사건의 경우에도 핵심 쟁점은 '인지'(몰카 여부)와 '동의'(묵시적 동의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촬영물 내에서 피해자의 거부 의사나 몰래 촬영 가능성 등이 명확하게 파악되는 사건은 예상보다 쉽게 결론이 나온다"면서도 "만약 다툼의 여지가 있는 촬영물일 경우에는 결국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통해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는지 혹은 성관계만 하는 사이였는지, 관계가 대등했는지 혹은 한 쪽이 '심리적 지배'를 당했는지 등도 유무죄 판단을 가르는 핵심 요소다. 묵시적 동의가 인정돼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의 대부분은 촬영 당시 친밀한 연인 관계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범죄 전문인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촬영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범죄지만,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원치 않았지만 그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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